'소설'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9/06/22 사랑의 파괴 - 아멜리 노통브
- 2009/06/11 [엄마한테 전화할 것]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2)
- 2009/05/22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 김훈
급작스럽게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다녀왔다. 나는 물론 중앙당 대의원이 아니라서 대의원대회에 참가할 일은 없지만 몇몇 소개받고 인사할 분들이 있어서 겸사겸사 다녀왔다.
여 름이고 간만에 기차도 타고 그러니 좀 가벼운 책을 골라잡았다. 하지만 책이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이번이 3번째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 - 이건 정말 멋진 작품이다. - 과 매우 흥미롭게 읽은 <배고픔의 자서전>. 그리곤 가장 최근에 번역된 <사랑의 파괴>이다. 굳이 평가를 하라면 이번에 읽은 <사랑의 파괴>가 가장 느낌이 덜하지만 그래도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열린책들
1.
전쟁은 1972년 시작되었다. 1972년은 내가 어마어마한 사실을 깨달은 해였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것은 바로 적이라는 사실을.
적을 갖지 못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적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역동적으로 살 수 있다.
적이 있음으로써 삶이라는 이 음울한 사건은 웅장한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지당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거기에서 얼뚱한 결론을 끌어냈다. 적과 화해하고,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빰을 내밀라는 것이다.
그런 바보짓을 하다니! 적과 화해한다면, 더 이상 적이 될 수 없지 않는가?
더 이상 적이 없다면, 또 다른 적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적을 사랑하되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화해 같은 것을 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2.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이 말에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에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듣는 사람에게 자기 몫의 바람을 남겨 주어야 한다고나 할까.
3.
자유는 몇 제곱미터의 공간이 주어졌느냐로 계산될 순 없었다. 자유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은 그들의 존재를 잊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4.
다른 이들의 짐작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내 태도는 오만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논리적이었을 뿐이다. 세계는 나에게로 귀착되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그건 주어진 사실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내가 무엇 때문에 친구들로 인한 번잡함을 감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내 삶에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이미 중심에 있는 나를 더욱 중심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5.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는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당시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움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애를 본 순간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 애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사랑했으며, 따라서 그 애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6.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 - 아니 할 일은 그것뿐이었다 - 은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무나 적이 될 수는 없었다. 우리의 기준에 부합해야 했다.
7.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갈망하는 것이 전쟁인 줄 알지만, 실제로 그들이 꿈꾸는 것은 결투이다. '일리아드'를 읽다 보면 때때로 몇 가지 선택된 적대 관계가 병치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영웅들은 상대 진영에서 자신에게 지정된 신화상의 적수를 찾아낸다. 그를 죽일 때가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그런 인물을. 하지만 그런 것을 전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개인주의와 자존심을 전제로 하는 애정의 산물일 뿐이다. 영원한 적수, 자기만의 적수와 멋진 결투를 꿈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걸맞은 상대와 한판 붙기 위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8.
휴식 시간. 그 말은 분명 새로운 창조를 위해 쉬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간의 실제 의미는 정반대였다. 내가 경험한 휴식 시간들은 대부분 파괴하는 데 - 반드시 남을 파괴하는 것에 국한도니 것은 아니었다 - 에 바쳐졌다.
9.
실수란 알코올과도 같다. 지나쳤다는 것을 이내 깨닫지만, 그쯤에서 절제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근본적으로 취기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분노 때문에 끝장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그 분노를 자존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술 마시는 것이 옳고, 실수하는 것이 옳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장하고 싶은 자존심. 그러므로 실수나 알코올 속에서 버티는 것은 논리를 무시하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고집을 꺾지 않는 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옳다고 인정해 줄 때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고, 실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온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10년 후, 10세기 후에는 시간과 역사와 신화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리라는 공격적이고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이란 모든 것을 승인해 주고, 아무리 지독한 실수나 악덕이라도 전성기를 갖게 마련이며, 옳고 그르고는 언제나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던가?
10.
나는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두 뺨이 분노와 절망과 모욕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품위를 잃을 때가 있는 법이다. 거기에 모욕당한 광란의 사랑이 합세하면 그 무너짐의 정도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11.
프랑스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거짓말로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엘레나의 반응은 내가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았음을 잘 증명해 준다. 그녀가 화가 났다면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여 름이고 간만에 기차도 타고 그러니 좀 가벼운 책을 골라잡았다. 하지만 책이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이번이 3번째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 - 이건 정말 멋진 작품이다. - 과 매우 흥미롭게 읽은 <배고픔의 자서전>. 그리곤 가장 최근에 번역된 <사랑의 파괴>이다. 굳이 평가를 하라면 이번에 읽은 <사랑의 파괴>가 가장 느낌이 덜하지만 그래도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열린책들
1.
전쟁은 1972년 시작되었다. 1972년은 내가 어마어마한 사실을 깨달은 해였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것은 바로 적이라는 사실을.
적을 갖지 못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적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역동적으로 살 수 있다.
적이 있음으로써 삶이라는 이 음울한 사건은 웅장한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지당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거기에서 얼뚱한 결론을 끌어냈다. 적과 화해하고,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빰을 내밀라는 것이다.
그런 바보짓을 하다니! 적과 화해한다면, 더 이상 적이 될 수 없지 않는가?
더 이상 적이 없다면, 또 다른 적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적을 사랑하되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화해 같은 것을 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2.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이 말에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에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듣는 사람에게 자기 몫의 바람을 남겨 주어야 한다고나 할까.
3.
자유는 몇 제곱미터의 공간이 주어졌느냐로 계산될 순 없었다. 자유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은 그들의 존재를 잊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4.
다른 이들의 짐작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내 태도는 오만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논리적이었을 뿐이다. 세계는 나에게로 귀착되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그건 주어진 사실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내가 무엇 때문에 친구들로 인한 번잡함을 감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내 삶에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이미 중심에 있는 나를 더욱 중심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5.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는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당시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움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애를 본 순간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 애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사랑했으며, 따라서 그 애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6.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 - 아니 할 일은 그것뿐이었다 - 은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무나 적이 될 수는 없었다. 우리의 기준에 부합해야 했다.
7.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갈망하는 것이 전쟁인 줄 알지만, 실제로 그들이 꿈꾸는 것은 결투이다. '일리아드'를 읽다 보면 때때로 몇 가지 선택된 적대 관계가 병치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영웅들은 상대 진영에서 자신에게 지정된 신화상의 적수를 찾아낸다. 그를 죽일 때가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그런 인물을. 하지만 그런 것을 전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개인주의와 자존심을 전제로 하는 애정의 산물일 뿐이다. 영원한 적수, 자기만의 적수와 멋진 결투를 꿈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걸맞은 상대와 한판 붙기 위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8.
휴식 시간. 그 말은 분명 새로운 창조를 위해 쉬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간의 실제 의미는 정반대였다. 내가 경험한 휴식 시간들은 대부분 파괴하는 데 - 반드시 남을 파괴하는 것에 국한도니 것은 아니었다 - 에 바쳐졌다.
9.
실수란 알코올과도 같다. 지나쳤다는 것을 이내 깨닫지만, 그쯤에서 절제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근본적으로 취기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분노 때문에 끝장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그 분노를 자존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술 마시는 것이 옳고, 실수하는 것이 옳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장하고 싶은 자존심. 그러므로 실수나 알코올 속에서 버티는 것은 논리를 무시하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고집을 꺾지 않는 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옳다고 인정해 줄 때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고, 실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온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10년 후, 10세기 후에는 시간과 역사와 신화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리라는 공격적이고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이란 모든 것을 승인해 주고, 아무리 지독한 실수나 악덕이라도 전성기를 갖게 마련이며, 옳고 그르고는 언제나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던가?
10.
나는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두 뺨이 분노와 절망과 모욕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품위를 잃을 때가 있는 법이다. 거기에 모욕당한 광란의 사랑이 합세하면 그 무너짐의 정도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11.
프랑스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거짓말로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엘레나의 반응은 내가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았음을 잘 증명해 준다. 그녀가 화가 났다면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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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잠이 안 와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제 하루 동안 지하철에서, 햇빛 내리쬐는 골목에서, 집 거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려서 였을까.
생 각해 보면 난 은희경의 소설은 그의 처녀작안 '새의 선물'부터 거의 대부분을 다 읽었고, 또 매우 잘 읽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은 이상하게 몇십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고 재미도 없다고 느껴 왔었다. 물론 이 말은 내 취향이 은희경이었다는 거지 신경숙이 이상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얼마 전, 생활도서관에서 경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후배 한 녀석이 책을 꺼내 놓았다. 그 책이 바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여러번 언론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신경숙이라는 것과 책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였기 때문에 혼자만의 상상으로는 아무래도 억척스러운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하며 큰 관심을 기울이기 않았다.
아마 올 해 어버이 날이 나한테는 좀 그랬던 날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 날이었던 5월 9일, 우리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여성한테는 매우 두려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었다. 엄마는 5월 8일 저녁에 입원을 했는데 그 때 병원에는 동생과 내가 함께 갔는데 동생이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에 한 젊은 초짜 여성 의사가 와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폐경이신가요?"
".... 네... 그래요."
" 환자분은(난 이 표현이 좀 거슬렸다. 그냥 어머님은... 이렇게 불러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폐경기라면 난소가 필요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난소도 같이 제거(제거라는 표현이 도대체 뭔가. 기분 나쁘게. 난 이 날 의사에 대해서 편견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하는게 어떤가요?"
"..... (엄마는 당황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의 얼굴 빛이었다.) 그건 싫은데....."
"뭐 환자분이 선택하시는 문제지만 그냥 난소를 내버려두면 간혹 염증이 생겨서 재수술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 그래도 싫은데.... 무서워서..."
이 때 내가 한마디 했다.
"됐어요. 그냥 우리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그 의사가 하는 말
"혹시 보호자세요?"
"...(난 이때도 좀 기분이 상했다. 당연히 보호자니까 옆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네... 아들이에요."
난 그날 엄마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초경이 언제였는지, 엄마의 폐경은 언제 찾아왔는지, 엄마는 그동안 몸 상태가 어땠는지.(다행히 심각했던 건 아니었다.)
의사가 가고 나서 난 조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병실로 들어오자 이번엔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마 작은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엄마가 수술 끝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꼭 읽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후배가 생활도서관에 그 책을 꺼내 놓았을 때 후배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어?"
"음... 좀 슬퍼요. (이야기를 더 하려다가)... 형 읽을꺼면 형 다 읽은 다음에 더 이야기해요. 내가 이야기하면 스포일러 같을 수 있으니까."
난 그 날 책을 내 가방에 넣었다.
한 동안 책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 책 도입부분이 참 짠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앞으로 눈물을 와락 쏟을 준비를 하라는 듯이 책이 참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부분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도입부분이 지나자 책은 속도감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면 결국 이 책은 이틀동안 다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도입부분을 지난 시점부터 난 많이 울었다. 책을 읽었던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방에서. 결국은 늦은 새벽까지 눈을 뜨고 마침내는 다 읽고 말았다. 읽는 내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물론 아주 펑펑 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흐르긴 했다.)
소설 속의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받았다. 소설 속의 엄마는 5남매 중 첫째 아들을 끔찍히 챙겼다. 소설 속의 엄마도 그렇게 억척같았다.
그 리곤 엄마는 사라졌다. 아니 잃어버렸다. 그 뒤로 자식들이, 남편이, 또다른 누군가가 회상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책에 그려져 있다. 그 모습들에서 우리 엄마 모습을 발견해서 인지 난 참 슬펐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책 한권을 사서 엄마한테 보내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나 역시 스포일러라 판단되기 때문에 더 하지는 않겠다.
한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거나, 전화 통화를 못한 사람들은 엄마한테 전화를 바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혹여나 쑥스럽거나 전화기에 바로 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의 엄마를 부탁할 존재는 사실 없다. 자기 자신밖에. 자기 자신 이외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이승을 벗어난 저승의 누군가. 천국 혹은 지옥의 누군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다시 한번 권한다.
잠이 안 와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제 하루 동안 지하철에서, 햇빛 내리쬐는 골목에서, 집 거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려서 였을까.
생 각해 보면 난 은희경의 소설은 그의 처녀작안 '새의 선물'부터 거의 대부분을 다 읽었고, 또 매우 잘 읽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은 이상하게 몇십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고 재미도 없다고 느껴 왔었다. 물론 이 말은 내 취향이 은희경이었다는 거지 신경숙이 이상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얼마 전, 생활도서관에서 경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후배 한 녀석이 책을 꺼내 놓았다. 그 책이 바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여러번 언론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신경숙이라는 것과 책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였기 때문에 혼자만의 상상으로는 아무래도 억척스러운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하며 큰 관심을 기울이기 않았다.
아마 올 해 어버이 날이 나한테는 좀 그랬던 날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 날이었던 5월 9일, 우리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여성한테는 매우 두려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었다. 엄마는 5월 8일 저녁에 입원을 했는데 그 때 병원에는 동생과 내가 함께 갔는데 동생이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에 한 젊은 초짜 여성 의사가 와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폐경이신가요?"
".... 네... 그래요."
" 환자분은(난 이 표현이 좀 거슬렸다. 그냥 어머님은... 이렇게 불러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폐경기라면 난소가 필요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난소도 같이 제거(제거라는 표현이 도대체 뭔가. 기분 나쁘게. 난 이 날 의사에 대해서 편견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하는게 어떤가요?"
"..... (엄마는 당황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의 얼굴 빛이었다.) 그건 싫은데....."
"뭐 환자분이 선택하시는 문제지만 그냥 난소를 내버려두면 간혹 염증이 생겨서 재수술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 그래도 싫은데.... 무서워서..."
이 때 내가 한마디 했다.
"됐어요. 그냥 우리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그 의사가 하는 말
"혹시 보호자세요?"
"...(난 이때도 좀 기분이 상했다. 당연히 보호자니까 옆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네... 아들이에요."
난 그날 엄마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초경이 언제였는지, 엄마의 폐경은 언제 찾아왔는지, 엄마는 그동안 몸 상태가 어땠는지.(다행히 심각했던 건 아니었다.)
의사가 가고 나서 난 조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병실로 들어오자 이번엔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마 작은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엄마가 수술 끝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꼭 읽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후배가 생활도서관에 그 책을 꺼내 놓았을 때 후배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어?"
"음... 좀 슬퍼요. (이야기를 더 하려다가)... 형 읽을꺼면 형 다 읽은 다음에 더 이야기해요. 내가 이야기하면 스포일러 같을 수 있으니까."
난 그 날 책을 내 가방에 넣었다.
한 동안 책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 책 도입부분이 참 짠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앞으로 눈물을 와락 쏟을 준비를 하라는 듯이 책이 참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부분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도입부분이 지나자 책은 속도감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면 결국 이 책은 이틀동안 다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도입부분을 지난 시점부터 난 많이 울었다. 책을 읽었던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방에서. 결국은 늦은 새벽까지 눈을 뜨고 마침내는 다 읽고 말았다. 읽는 내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물론 아주 펑펑 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흐르긴 했다.)
소설 속의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받았다. 소설 속의 엄마는 5남매 중 첫째 아들을 끔찍히 챙겼다. 소설 속의 엄마도 그렇게 억척같았다.
그 리곤 엄마는 사라졌다. 아니 잃어버렸다. 그 뒤로 자식들이, 남편이, 또다른 누군가가 회상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책에 그려져 있다. 그 모습들에서 우리 엄마 모습을 발견해서 인지 난 참 슬펐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책 한권을 사서 엄마한테 보내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나 역시 스포일러라 판단되기 때문에 더 하지는 않겠다.
한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거나, 전화 통화를 못한 사람들은 엄마한테 전화를 바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혹여나 쑥스럽거나 전화기에 바로 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의 엄마를 부탁할 존재는 사실 없다. 자기 자신밖에. 자기 자신 이외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이승을 벗어난 저승의 누군가. 천국 혹은 지옥의 누군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다시 한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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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2009/06/15 02:38
동생이 사다놓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시작하는 몇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그만두신건지, 요새는 뭘하고 계시는지, 연애라는 건 잘 하고 계신지 등 별것이 다 궁금하네요. 오빠 얼굴 본지, 오빠와 함께 술마신지 정말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뭐하고 살고 계세요? ^^ 저는 늘 그렇듯 늘 그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야 별 것 없고, 별 것 있다 하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면 결국 의미 없어지잖아요, 아멜리 노통과 김훈과 신경숙으로 이어지는 오빠의 포스팅에 감사하는 요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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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2009/06/22 17:34
와... 나 역시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요새는 어떤 영화를 보고 있는지. 혹시 연애라는 건 하는지. 궁금하다네.
난 늘 그렇듯 사는 건 아니야. 왜냐하면 지난 4월 14일 이후로 내 삶이 점차 달라지고 있으니까.
병특 끝나면서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을 한번씩 찾아가서 밀린 수다도 좀 하고 영화도 보고... 간단히 술도 한잔 해야지... 했는데 그게 참...
흔한 말이지만... 인연이 있다면... 술 한잔이야 곧 먹게 되겠지....^^
건강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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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제목을 누르면 알라딘으로 갑니다.)
김훈, 푸른숲(2005년)
소설가 김훈이 2005년에 쓴 소설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김훈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사실 단 한번도 김훈의 소설을 제대로(이 말은 책을 대부분 읽다 말았다는 말이지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정말 요즘 글이 잘 읽히는(요즘 같은 느낌이면 하루에 한권씩 볼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아마 이것도 순간이겠지요.) 시절에 그냥 단숨에 읽었습니다.
제목이 좀 끌려서 읽었다고 하는 편이 솔직히 감정인데 읽고 나서는 마음이 찡해져서 좀 그랬습니다. 아래는 읽으면서 몇몇 선정한 부분들입니다.
1.
봄에, 앞섬의 무덤들은 햇빛을 받아 포근했다. 선착장에서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으면 앞섬 무덤에서는 오래된 흙과 햇볕의 향기가 풍겨왔다. 겨울에 무덤들은 흰눈에 덮여 따스해 보였고 그 눈 위에 달빛이 비치는 밤에 무덤들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선착장에 나와서 해풍에 실려오는 앞섬 무덤들의 냄새를 맡거나 겨울 달밤에 눈 덮인 무덤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2.
봄에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빈둥거리고 있으면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느라고 윙윙윙, 쉭쉭쉭, 쿨렁쿨렁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들의 몸 속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몸 속에서는 소리가 난다. 나무도 풀도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3.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저 가볍고 미끄러운 몸놀림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나는 내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나는 혀를 빼서 발바닥 굳은살을 핥았다.
4.
낯설다고 해서 짖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이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다. 그 낯설음 속에 내가 봐줄 수 없는 무례함이나 건방짐, 사나움 같은 것이 느껴질 때 나는 짖어댄다. 나는 나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는다. 믿음은 확실해야 하고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다급히 짖은 때나 싸울 때 나는 짖지 마, 이리 와, 라고 외치는 주인님 말을 듣지 않는다. 들리지가 않는다. 주인님은 사람이라서,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싸워야 한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개는 개 축에 들지 뭇하고 판단이 정확치 못한 개는 똥개다.
5.
싸울 때는 입을 벌려서 짖지 않아도 몸 속에서 으렁 으렁 으렁, 와릉 와릉 와릉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싸울 때 내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서 슬프고 괴롭고 다급하다. 싸움은 혼자서 싸우는 것이다. 아무도 개의 편이 아니다. 싸우는 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 싸울 때, 미움과 외로움은 내 이빨과 뒷다리와 수염으로, 내 온몸으로 뻗쳐나온다. 으렁 으렁 으렁 소리는 그 외로움과 슬픔이 터져 나오는 소리다. 화산이 터지기 전에 땅 밑에서 용암이 끓는 소리와도 같다. 싸움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있다. 다라서 다 큰 개가 되면 그걸 알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은 끝내 피할 수 없다.
6.
앞발을 창문틀에 올리고 사람처럼 뒷다리로 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달을 밟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흘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7.
나무의 흰 속살에 나이테가 드러났다. 어떤 나무는 속살이 분홍색이었다. 가을 햇볕에 나무가 말라가면서 풍기는 향기를 나는 나 혼자서 사랑했다. 깊은 땅 밑을 흐르는 맑은 물의 향기와 산 속에서 부는 바람의 향기와 가을 햇빛의 향기를 나무가 모두 빨아들여서 다시 토해내는 향기였다.
8.
할머니가 밭일을 시작할 때 주인님은
- 어머니, 이제 그만 좀 부지런 떠시고 쉬세요. 아이들이나 챙겨주세요.
라며 말렸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 땅을 놀리면 벌 받는다. 노는 땅에 쪼이는 햇볕이 아깝지도 않냐?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9.
나는 비를 맞으며 흐느적흐느적 걸었다. 다 젖어서 더 젖을 것도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다리 겨드랑 밑과 턱 밑에서 수컷의 비린내가 물씬 풍겨나왔다. 힘 좋고 가득 찬 자의 냄새가 아니라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냄새였다. 흰순이를 찾아가는 길은 그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길이었다.
10.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는 날, 나는 내 목줄을 잡은 영희를 따라서 보건지소에 갔다. 나는 두 살이지만 다 큰수놈이고 영희는 초등학교 육학년이지만 아직도 어린 여자아이다. 영희가 잡은 목줄에 어끌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는 일은 지나친 호사 같아서 창피스러웠지만, 개가 저 혼자서 예장주사를 맞으러 갈 수는 없었다. 개 혼자 가면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놓아주지도 않는다.
11.
그렇고 못되고 경우 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쨌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물린 다리는 땅을 디딜 수 없이 힘이 빠졌고 내 몸이 아닌 것처럼 허청거렸으나, 그 욱신욱신 쑤셔대는 고통은 모조리 나의 것이었다.
12.
큰길 가로수 밑둥까지 악돌이의 오줌 냄새는 진동했다. 악돌이가 차지한 구역 안에도 개들은 많았지만, 개다운 개가 없었다. 사람 옆에서 편히 얻어먹고 살아서 아랫배가 늘어진 놈들이거나 자신이 개인지 닭인지조차 모르고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쓰레기통을 헤집는 놈들뿐이었다. 다 컸다는 놈들의 덩치가 꼭 쥐새끼만한 것들도 있었다.
이런 놈들은 짖은 때는 양철통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다리는 대개가 안짱다리였고 걸을 때는 종종걸음이었다. 살찐 집토끼 같은 것들이 파마를 한 머리에 리본을 달고 다니는 꼴과 마주칠 때 나는 역겨워서 피했다. 악돌이가 동네에 나와 돌아다니며 이런 놈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집 안에서 밖을 향해 짖지도 못했다.
13.
떠나기 며칠 전날, 영희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 엄마, 보리는 데리고 갈 거야?
- 글세다. 저렇게 싸질러 다니는 놈을 어떻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있겟니?
- 그런 어떻게?
- 개들은 개 갈 길이 있는거야.
14.
악돌이가 떠나고 흰순이가 죽고 없는 마을은 견딜 수 없이 허허로웠다. 할머니는 남은 짐을 정리하느라고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는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을 할 일 없이 쏘다녔다. 주인님의 무덤 아래쪽으로 바다는 언제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철석거리며 밀려나가고 밀려들어왔다.
할머니가 떠나면 나는 또 어디론가 팔려가야 할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마을에 악돌이가 여전히 힘세고 사납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랐다. 저절로 되는 것들은 다들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15.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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