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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인용한 칼럼은 새사연 정치사회센터의 보건분과에 계시는 한의사 선생님이 소개해 준 글입니다.

'건강정책포럼 /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의 칼럼인데 실제 사이트에 가 보니 칼럼과 정책동향 등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칼럼의 원문은 http://www.hpforum.or.kr/?z=bbs.bboard01&zz=view&bseq=1247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한 집단에서의 가끔씩(?) 벌어지는 일탈행위는 그 일탈행위자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자가 포함되어 있는 인구집단의 평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입시 경쟁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지하철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학생의 경우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집단 전체가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관계가 깊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걸 운동가와 운동집단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운동가들의 도덕적 문제(성폭력, 도박, 비리, 욕설)와 정치적 문제(정파적 인식과 행동)는 단순히 그런 행위를 하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운동집단 전체의 평균 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재미있게 역발상을 한 번 해 봅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인구집단의 평균과 일탈의 정도를 비틀어서 적용해 보자는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전략, 전술에 대한 것을 주류 운동집단(어쩌면 집단이 아닐지도 모릅니다)에서는 개량 혹은 일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칼럼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개량 혹은 일탈은 우리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운동집단 전체의 평균과 그 끈이 맞닿아 있는 겁니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글에서 나온 바 대로

설령, 분포의 꼬리를 (사형이나 무기 징역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분포 자체의 이동이 없는 한 누군가는 또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잘 알려진 고위험 접근법(high risk strategy)의 단점입니다.

우리를 공격해서 우리를 괴멸(?)시킨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운동집단의 의식이 움직이지 않고는 누군가가 또 그자리를 채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렇기 때문에 운동집단이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원칙' 역시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겁니다. 물론 원칙의 '원칙'은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 원칙의 '원칙'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그 일을 하지 않을테니까요.

이제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현상적으로 우리의 말, 행동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운동집단 전체의 평균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 평균 문제의식이 뭐겠습니까. 요즘 누구나 다 이야기하는 바로 '혁신'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쓸대없는 일은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구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거만하고 오만한 말인가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우리의 말과 행동은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운동집단의 의식을 좀 더 왼쪽으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출처 http://readseoul.tistory.com/


[건강정책칼럼]

인구집단 '평균'과 일탈'유병률'의 함수
김명희(을지의대)


얼마 전,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여론이 들끓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범행의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던 데 비해, 가해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것이 참작되어 형량이 예상 밖으로 낮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기 징역이나 사형을 통해 다시는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화학적 거세에 전자 발찌, 신상의 완전 공개 등 사회적 분노의 수준에 걸맞은 강력한 처벌들이 제안되었습니다. 국회 의원들이 나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강력한 징벌과 재발 방지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일련의 사회적 반응 앞에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선구적인 역학자 제프리 로즈(Geoffrey Rose, 1926-1993)는 유작이 되어버린 <예방의학의 전략(The strategy of preventive medicine, Oxford University Press, 1992)>에서 ‘인구 집단의 평균이 일탈의 발생에 미치는 효과’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 인구 집단 안에서 개인들 간 변이의 범위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힘과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 사이의 균형에 의해 통제되며, 그 결과 인구 집단 평균의 변화는 전체적인 분포의 이동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52개 국가/사회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인터솔트 연구(Intersalt study) 결과를 살펴보면, 인구 집단의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상관성은 매우 높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 집단의 평균 혈압 수준이 매우 낮은데(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경우란 거의 없고, 마찬가지로 집단의 체질량 지수 평균이 높아질수록 비만의 유병률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일탈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혈압 같은 신체 건강이든, 인지 기능 같은 정신 건강의 문제이든, 혹은 타살률 같은 사회적 일탈이든 그 양상은 비슷합니다. 보건학적, 사회학적 문제의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극소수의 일탈자들’에게만 국한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분포’라는 연속선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불평등, 여성의 성적 대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평균’ 수준을 생각해봅니다.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던 정치인이나, 여성 기자를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서 실수를 저지른 국회의원,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 드렸을 텐데’라며 손님 접대의 소홀함을 부끄러워했던 도지사, 여자 대학생에게 ‘감칠 맛’을 운운하던 교육자께서는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저녁 무렵이면 ‘미녀 ○○명 항시 대기’를 알리는 매우 ‘단란한’ 주점의 전단이 주택가에 뿌려지고, 손가락으로 리모컨만 누르면 작동 가능한 노래방에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중 매체들은 (대중이 원한다는 명목하에) 10대 소녀 연예인들의 성적 매력을 탐구하느라 여념이 없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여유치원에 들이 쇼 프로에 등장해 선보이는 정체불명의 ‘섹시 댄스’ 앞에서 어른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민관 합동의 파상 공세라 할 만 합니다. 한국 사회상 가진 의식의 ‘분포 (distribution)’상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원에 발생률이 낮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몇 년 심지어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이 성별에 따라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남성들은 심리 묘사니 미장센, 음악을 칭찬하느라 바빴지만, 여성들은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상황 ― 어두운 밤길에 홀로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의 공포 ― 의 100% 현실성에 공감하며 ‘너무 실감나고 무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곳이 한국 사회입니다.

인구 집단 전체의 분포가 변화하지 않으면서 일탈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분포의 꼬리를 (사형이나 무기 징역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분포 자체의 이동이 없는 한 누군가는 또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잘 알려진 고위험 접근법(high risk strategy)의 단점입니다. 성 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 없이, 극단적 사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만연한 성폭력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프리 로즈의 계산에 의하면, 인구 집단의 평균 혈압이 단지 3%만 낮아져도 고혈압과 관련된 임상적 문제의 규모를 25%나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인구 집단 전략(population strategy)의 이 엄청난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의식 분포를 조금 왼쪽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왼쪽’이라는 말에 언짢아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프의 X축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값이 커지도록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분포의 ‘평균’ 수준을 낮추려면 안타깝게도(!) 왼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악무도한 성범죄자 대 나머지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이분형 분포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포함된) 현실의 연속형 분포를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 집단 관점의 공중 보건 전략은 사회적 건강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건강정책칼럼 4호] 200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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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치미 2009/11/15 18:15

    - 솔직히 말하면 게임은 사실상 끝났다. 주류 집단의 고립.축소(또는 몰락)은 시간문제다.
    - 문제는 그 다음에 새 싹이 돋아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이건 잘 모르겠다.
    - 개인적으로는 주류 집단과 함께 지나온 30대가 아쉽다.

    • BlogIcon 어처구니 2009/11/16 10:23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주류집단의 고립, 축소가 새세대의 출현을 만들어주진 않는다는 겁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들이 몰락해도 유사 주류집단이 또다시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주류 운동 집단에 대한 평가와 비판에 주 시선이 있었는데. 선배님 말씀대로 사실상 게임이 끝난거라면 우리는 이제 새세대에 대한 것으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물론 선배님은 이전부터 계속 주장해 오신 거지만요. 새세대가 주류집단이 몰락한 후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다른 주류집단이 그 공간을 채우게 되기 보다는 이제는 운동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기에... 걱정이 큽니다...

    • 레이 2009/11/23 13:16

      새세대를 좀 챙겨주세요 ㅋㅋㅋㅋㅋ
      새세대가 싹터야 할텐데
      지금 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새세대를 우석훈씨말을 그대로 빌려 표현하자면
      '육화된 신자유주의'세대라 자학과 소심함 자신감없음의 상태로 지극히 삐뚤어져 있답니다.
      뭔가가 필요해요.
      우석훈말처럼 쫄지마라고 계속 얘기해주면 풀릴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BlogIcon 어처구니 2009/11/23 15:34

      레이/ 우석훈 말처럼 쫄지말라고 한다고 해서 되겠는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 하지만 못 들어가니까 그런거지. 이럴 때는 어른들이 호랑이굴 주변에 횃불을 들고 길도 안내해주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기도 해야지...
      문제는 어른들 자기네가 주인공인줄 안다는 것. 멋진 조연이 있어야 주연 또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법.
      쫄지말라는 격려만으로는 어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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