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3건
- 2010/02/26 운동의 경로, 감사의 표현, Let It Be (2)
- 2010/02/19 당원번호 : 24124 - 절반의 당원을 넘어
- 2010/01/29 2010년 1월 29일 : 나, 심장, 걸어가자.
- 2010/01/21 이런 정치인이 좋다.
- 2010/01/20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1)
- 2010/01/18 블로거 토론회. 당신을 기다립니다.
- 2010/01/13 <초대합니다> 대한민국 블로거들이 이야기하는 2010 한국경제
- 2010/01/12 진보메타블로그 2010 전략(?) (4)
- 2009/12/31 첫번때 주자 : 도광양회韜光養晦
- 2009/12/28 리더십에 대해
1. 역사에도 발전 경로가 있듯이(이게 논리적으로 정합하든, 그렇지 않든) 운동 주체에게도 발전 경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나이로 하는 것도 명성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운동을 시작하거나, 지켜오거나,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운동 경로가 보이기 마련이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87년 7월 8일 연세대 백양로 광장에서 이한열 추모사를 하러 등단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추모사는 하지 않고 수많은 열사들을 한명씩 외쳐 부르며 추모사를 대신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을 추모하며 목놓아 울던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맞아 노상에서 단식이란 걸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미래야 뻔하지만 김진숙의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강권통치와 싸우겠다며 모여 앉은 20대 청년들의 깨끗한 열기가 좋았을 뿐이고, 고상한 추모사 대신 통곡으로 자리를 대신한 노목사의 처신이 좋았을 뿐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거리에 나 앉은 김진숙이라는 여자가 좋을 뿐이고, 요새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총명한 초년생 정치인의 좌충우돌하는 어리숙한 행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친구가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잔머리를굴렸다면 나는 그녀를 보는 재미가 덜했을 듯 하다.
나는 내가 미쳐갈 때가 좋다. 승패를 따지기에는 너무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우리가 그냥 좋다. 신영복이 보여주는 지혜로움은 한 30년쯤 후에 승패가 더 이상의 여지 없이 명백해졌을 때 그 때가서 술이나 쳐먹으며 천천히 갖도록 하자.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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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이 창당 10주년을 맞이한 것과 경찰과 검찰이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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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위 사람들에게 왜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느냐고 질책(?)을 했음에도 최근에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못했다가 아니라 안 했다. 이거 중요하다.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안 한 건 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든 공책이든, 어디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숨 쉬고 있다면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 물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어딘가에 문자로 된 텍스트를 던진다는 의미 그 이상이므로 남들이 볼 수 있어야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자신의 마음에도 글을 쓸 수 있다. 마음에 차곡차곡 글을 쓰다가 도저히 마음 속의 빈공간이 없거나, 아니면 이제는 마음 밖으로 꺼내도 덜 부끄럽거나, 또는 마음에 써 놓은 것들이 어디론가 도망갈까봐 두려워서. 여하튼 그런 이유로 세상에, 현실 공간에 글을 쓰게 된다.
2.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건, 무엇을 쓸 건가이다. 타인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오해하지 말 것은 어떤 글을 써야 하냐는 글의 소재나 내용의 문제지 글의 완성도나 잘 읽힘 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좋은 글, 잘 읽히는 글, 완벽한 글을 상상하면 안 된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사 좋은 글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글이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조금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와 대화, 사색이 동반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법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학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이 세상과 사회를 분석하고 잘 못 된 부분을 바꾸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함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란 좋은 선전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효과적인 선전, 선동 역시 학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3. 위와 같은 생각 끝에 앞으로는 마음에 쓴다는 기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일기와도 비슷할 수 있는데, 일기와 다른 점은 매일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하지만 가급적이면 매일매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제목이 그 날 글감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이게 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제목도 날짜와 그 날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냥 붙이려고 한다.
4. 아침에 출근하면서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4집:레미제라블)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며칠 전부터 이 앨범만 듣는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은 고등어인데 동네주민 연자씨는 이 곡이 너무 인간중심적인 것 같다며, 그리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별로라도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자씨는 이 곡과 벼꽃, 봄눈(이 곡은 박지윤이 부르기도 했는데 작곡가는 바로 루시드 폴, 이번 앨범에 자신이 직접 불렀다)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역시 연자씨는...
5. 나 역시 평소에는 앨범 중 다섯번째 곡인 '벼꽃'과 여섯번째 '고등어'를 주로 듣곤했는데, 최근에는 첫번째 곡 평범한 사람과 두번째 곡 걸어가자를 듣는다. 평범한 사람은 살기위해 올라갔다는 이야기. 하지만 더 갈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 너무 슬퍼하진 말라는 이야기. 이쯤 되면 다 안다. 무엇을 이야기란 노래인지 말이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곡 '걸어가자'는 그냥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 노래와 가사를 먼저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2.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건, 무엇을 쓸 건가이다. 타인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오해하지 말 것은 어떤 글을 써야 하냐는 글의 소재나 내용의 문제지 글의 완성도나 잘 읽힘 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좋은 글, 잘 읽히는 글, 완벽한 글을 상상하면 안 된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사 좋은 글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글이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조금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와 대화, 사색이 동반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법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학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이 세상과 사회를 분석하고 잘 못 된 부분을 바꾸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함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란 좋은 선전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효과적인 선전, 선동 역시 학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3. 위와 같은 생각 끝에 앞으로는 마음에 쓴다는 기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일기와도 비슷할 수 있는데, 일기와 다른 점은 매일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하지만 가급적이면 매일매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제목이 그 날 글감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이게 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제목도 날짜와 그 날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냥 붙이려고 한다.
4. 아침에 출근하면서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4집:레미제라블)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며칠 전부터 이 앨범만 듣는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은 고등어인데 동네주민 연자씨는 이 곡이 너무 인간중심적인 것 같다며, 그리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별로라도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자씨는 이 곡과 벼꽃, 봄눈(이 곡은 박지윤이 부르기도 했는데 작곡가는 바로 루시드 폴, 이번 앨범에 자신이 직접 불렀다)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역시 연자씨는...
5. 나 역시 평소에는 앨범 중 다섯번째 곡인 '벼꽃'과 여섯번째 '고등어'를 주로 듣곤했는데, 최근에는 첫번째 곡 평범한 사람과 두번째 곡 걸어가자를 듣는다. 평범한 사람은 살기위해 올라갔다는 이야기. 하지만 더 갈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 너무 슬퍼하진 말라는 이야기. 이쯤 되면 다 안다. 무엇을 이야기란 노래인지 말이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곡 '걸어가자'는 그냥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 노래와 가사를 먼저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걸어가자
루시드 폴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루시드 폴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6. 살아가면서 자신을 가슴 떨리게 하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할 지 모르지만 떨리는 이 가슴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사랑도 설렘이나 가슴이 움직이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 단어는 '조국', '한 호흡', '걸음'. 그리고 어쩌면 '연자씨'. 하하하. 내가 오늘 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한 호흡'이다.
7. 대학 다닐 때 읽어던 소설 중에 어쩌고 저쩌한 게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나서 선배들과 토론을 하는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이 책의 종자(핵심 정도라도 파악하자)는 뭐라고 생각하나."였는데 난 '그냥 재미있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난 그 책에서 말하는 바가 '한 호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바로 이 '한 호흡'은 나에게 가슴 떨리는 단어가 되었다. 운동은 바로 이 한 호흡을 위해 하는 것이라 믿었다.
8. 그럼 한 호흡이란 뭘까. '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주의 표어처럼 '한 호흡'은 자신을(주체) 전체에 접속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 역할 등을 조절하면서 결국은 한 몸과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혁신)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존에 알던 '한 호흡'에서는 거칠게 표현하면 내 호흡이 빠른지 느린지, 굴곡이 많은지 등의 현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루시드 폴의 노래처럼 세상이 어둡고, 두렵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신 또는 절대자를 찾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절대자나 신은 그 순간 내 옆에 있지 않았다. 절대자는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즉, 뛰어가든 날아가든, 아마 걸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누구 하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9.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간다.
10. 내가 내린 결론은 '한 호흡' 이전에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무슨 '한 호흡'을 할 수 있겠는가. '한 호흡'은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심장 박동수와 내 심장 박동수를 맞추거나 절대자의 의도를 퍼즐 맞추듯이 분석하는 게임이 아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부단히 걸어가는 과정과 그 결론이 바로 '한 호흡'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질문 중 몇 개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걷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 동안 그토록 걸었던 것은 그 사람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내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의사진찰도, 타인의 이야기도 아닌 스스로 걷는 것이다. 걷는 걸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안해도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운동의 영원한 진리는 결국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이기 때문이다.
11.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올 여름에도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싶다.
7. 대학 다닐 때 읽어던 소설 중에 어쩌고 저쩌한 게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나서 선배들과 토론을 하는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이 책의 종자(핵심 정도라도 파악하자)는 뭐라고 생각하나."였는데 난 '그냥 재미있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난 그 책에서 말하는 바가 '한 호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바로 이 '한 호흡'은 나에게 가슴 떨리는 단어가 되었다. 운동은 바로 이 한 호흡을 위해 하는 것이라 믿었다.
8. 그럼 한 호흡이란 뭘까. '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주의 표어처럼 '한 호흡'은 자신을(주체) 전체에 접속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 역할 등을 조절하면서 결국은 한 몸과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혁신)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존에 알던 '한 호흡'에서는 거칠게 표현하면 내 호흡이 빠른지 느린지, 굴곡이 많은지 등의 현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루시드 폴의 노래처럼 세상이 어둡고, 두렵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신 또는 절대자를 찾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절대자나 신은 그 순간 내 옆에 있지 않았다. 절대자는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즉, 뛰어가든 날아가든, 아마 걸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누구 하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9.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간다.
10. 내가 내린 결론은 '한 호흡' 이전에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무슨 '한 호흡'을 할 수 있겠는가. '한 호흡'은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심장 박동수와 내 심장 박동수를 맞추거나 절대자의 의도를 퍼즐 맞추듯이 분석하는 게임이 아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부단히 걸어가는 과정과 그 결론이 바로 '한 호흡'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질문 중 몇 개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걷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 동안 그토록 걸었던 것은 그 사람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내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의사진찰도, 타인의 이야기도 아닌 스스로 걷는 것이다. 걷는 걸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안해도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운동의 영원한 진리는 결국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이기 때문이다.
11.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올 여름에도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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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10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핵심은 결국 진보개혁진영의 단합과 연대다. 한마디로 힘을 모아서 MB정부와 한나라당에게 큰 타격을 주자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결론은 이정희, 김부겸과 같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장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이 좋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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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드는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사싱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출처 http://starriness.egloos.com/271575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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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2010/01/21 01:35
그렇군요..~~~...조금은 고민이 이해되기도 합니다만....물론 철학이 대단히 중요하고 결국은 그리고 귀착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철학은 책이나 뭐 이런데서 나온다기 보다도...사람들의 생활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천착에서 나올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내가 30살때 그토록 '평범한 생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지요...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시민적 행태라고 터부시하고 속세를 떠나는 순간 철학은 공허해지지요..
근대 철학은 그랬던것 같습니다....객관세계의 법칙성에 대한 이해....그러나 지금의 철학은 인생관을 정립하는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세계관-인생관-가치관-행동양식의 순서가 아니라 인생관-세계관 -가치관-행동방향 뭐 이런 순서일거라는 거죠...
현재까지 토론회 발표자 신청한 사람
1.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블로그 http://www.leejeonghwan.com/
트위터 @leejeonghwan
2. 이성규 테터앤미디어 미디어팀장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
트위터 @dangun76
3. 석진혁 청년유니온(준) 간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hero990926
트위터 @sactionmask
4. 정다혜 2010년 연세대학교 신임 총학생회장
블로그 곧 올리겠음.
트위터 곧 올리겠음.
5. 김현 머니해킹 저자
블로그 http://www.blog.lawfully.kr
야심차게 기획한 토론회인데 당일 사람들이 별로 안오면 어쩌냐 하는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나 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습니다. 또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학습을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23일) 오후 2시 꼭 와 주세요~
분명 재미있을 겁니다...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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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의 2010 경제 쾌도난담>
우리가 웃고 즐기는 것이 바로 한국 문화이고 우리가 배우는 것이 한국 교육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땀흘려 일하는 것이 한국 경제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경제라는 단어에는 소중한 '땀내음'이 아닌 어렵고 복잡한 수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찬 경제가 아니라 '땀내음'과 우리의 노동이 들어간 대한민국 경제의 '생얼'을 이야기합니다.
보통사람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 99%를 위한 한국 경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과 우리의 땀이 경제가 되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블로거들의 2010 경제 쾌도난담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과 테터앤미디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최근 한파와도 같이 차가운 2010 한국경제를 블로거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토론회입니다. 형식적이고 무거운 토론회가 아닌 가까운 친구들 사이의 수다처럼 재미있는 토론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보다 각자의 기쁨과 슬픔, 생활이 녹아있는 경제가 진짜 경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블로거, 여전히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블로거. 누구든 좋습니다.
생활이 뭍어나는 경제이야기를 하고픈 블로거라면 누구나 환영입니다.
블로거, 당신의 거침없는 웃음, 눈물, 생활의 상상력을 모십니다.
현재까지(1월 19일) 발표 신청해 주신 분들입니다.
1.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블로그 http://www.leejeonghwan.com/
트위터 @leejeonghwan
2. 이성규 테터앤미디어 미디어팀장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
트위터 @dangun76
3. 석진혁 청년유니온(준) 간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hero990926
트위터 @sactionmask
4. 정다혜 2010년 연세대학교 신임 총학생회장
블로그 곧 올리겠음.
트위터 곧 올리겠음.
5. 김현 머니해킹 저자
블로그 http://www.blog.lawfully.kr
토론회는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토론회 참가는 발표자 참가와 일반 참가가 있습니다.
<발표신청>
: 10분 발표 분량의 PPT문서를 슬라이드셰어 이용하여 포스팅하고 메타블로그(http://blogfestival.kr)로 발행
: 메타블로그에 가입해야 합니다. 포스팅 시 태그 ‘발표자료’ 삽입
: 1월 23일 토론회 전까지 참가신청을 받고 웹상에서 토론 진행(댓글, 트랙백 등)
: 트위터를 통해 질문도 받음
<참석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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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모임 때 발표했던 PPT 자료를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공개합니다.
올릴려고 다시 보니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좀 낯부끄럽고 그렇네요.
여하튼 지난 2009년을 지내온 것처럼 2010년도 힘차게 지내봅시다.
마지막으로, 그 날 분발해 달라고 제가 이야기했던 블로거님들은 이 글을 보는 순간, 당장 글 하나 써서 올리는 센스를 발휘해 주세요~
PPT는 말씀드린 대로 슬라이드셰어(slideshare.com)를 통해 공유합니다.
썸네일 이미지가 필요해서...
올릴려고 다시 보니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좀 낯부끄럽고 그렇네요.
여하튼 지난 2009년을 지내온 것처럼 2010년도 힘차게 지내봅시다.
마지막으로, 그 날 분발해 달라고 제가 이야기했던 블로거님들은 이 글을 보는 순간, 당장 글 하나 써서 올리는 센스를 발휘해 주세요~
PPT는 말씀드린 대로 슬라이드셰어(slideshare.com)를 통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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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2010/01/12 16:54
요즘 생각은 IT는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생활하는 것 같습니다. IT를 생활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움의 영역으로 생각하면 더딜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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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결의충전. 릴레이 글쓰기의 제목으로 달아보았습니다. 첫번째는 그대님입니다. 바로 접니다.
한 해를 보내고(하루 남았지만..) 다음 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짠해집니다. 이 짠함은 나를 향한 짠함입니다. 특히 2009년은 더욱 그렇습니다. 평가 없는 전망이 없기에 2009년 평가를 해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평가 없는 전망이 없는 것처럼, 목표 없는 평가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2010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2009년 목표일 겁니다. 물어 봅니다. '당신의 2009년 목표는 뭐였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2009년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1. 평범한 사람이 되자.
목표가 평범이라면 그동안 특별, 혹은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건방진 목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동안 보통 이하였기 때문에 평범함을 목표로 세웠다고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29살 12월 1일에 군대 생활(현역은 아니지만 여하튼 군대생활입니다)을 시작하여 2년 5개월 후인 올해 그러니까 2009년 4월 14일에 마감했습니다. 더 멀리 보면 지난 20대 내내 보통 이하(누구는 내 삶을 특별, 혹은 유별하다고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였기 때문에 참으로 절박한 목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도달하는 그 과정을 왜 너만 유별나게 표를 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4월 14일은 30대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20대의 뒤늦은 끝맞침이라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올해 4월 15일(날짜가 좀 의미심장힙니다...^^)부터 비로소 30대를 맞이했습니다. 법적 나이는 내일부터 33살이 되지만 느낌은 31살인 것입니다. 남들보다 4개월 짧은 30살의 기간을 보내고 31살이 되니 이제야 김광석 형님의 '서른 즈음에'가 실감납니다. 내가 보낸 것도 아닌데 시간이 그렇게 가버리네요. 아쉬움 보다는 부족함이 밀려와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여하튼 2009년에 전 평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표2. 밥 값을 하자.
올 초에 평범함과 나이값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평범함은 여전히 유효하나 나이값이라는 말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특정한 나이게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한다는 건 상식적으로나, 제 가치관으로나 맞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니 밥 값이 더 정확한 표현인 듯 합니다. 어찌보면 밥 값을 하기 위해 경제공부를 나름 열심히 한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선배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운동권들이 경제문제에 소홀했던 건(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자신의 밥 값이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계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밥이라는 게 거저 차려지는 게 아닌데, 수저 하나만 올리면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게 제 20대입니다. 거침 없어 보이고, 때론 스스로 멋있다는 말도 안되는 자뻑 모드에 취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제 밥 값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경제생활을 조금만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이 그다지 크지 못 했다는 반증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 적게 먹는 게 이 혼탁한 사회에서도, 제 건강에도 좋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많은 일을 하지도 않고 평소에 똑같이, 오히려 밥 값보다 더 많은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먹는 양과 소비량을 줄이기 못한다면 제 밥 값을 높이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2009년은 밥 값을 계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밥 값이 얼마 안된다는 사실에 반성이 드는 해였습니다. 목표 수행에 절반이 있겠느냐만은 좋게만 평가한다면 목표 달성을 위해 첫 삽을(요즘에는 삽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지만 여하튼) 뜬 셈입니다.
도광양회 韜光養晦
韜 : 감출 도, 칼집 도 光 : 빛 광 養 : 기를 양 晦 : 그믐 회
2010년 제 목표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위의 사자성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서글퍼런 날 빛(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을 칼집에 감추고 곰비임비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2010년의 목표로 잡은 것은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냉엄한 현실 파악과, 부족한 실력으로 설레발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날 빛을 감춘 곳이 칼집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명심합니다. 그건 언젠가는 그 칼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칼 날이 짧고 칼을 들 힘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칼을 빼내들어 베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계속적인 관찰과 성찰만이 칼날의 무뎌짐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09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과 함께 2010년에는 제대로 칼을 갈아보자는 말씀을 스스로와 저는 아는 많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릴레이 글쓰기의 다음 주자는 청년유니온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침햇살송(실명 거론 안함...^^)님으로 하겠습니다.
글의 기한은 3일이며, 글 작성 후 발행 시 태그로 '2010 결의충전'(한 칸 띄운 것 유의할 것)을 넣어주시면 됩니다.
한 해를 보내고(하루 남았지만..) 다음 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짠해집니다. 이 짠함은 나를 향한 짠함입니다. 특히 2009년은 더욱 그렇습니다. 평가 없는 전망이 없기에 2009년 평가를 해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평가 없는 전망이 없는 것처럼, 목표 없는 평가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2010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2009년 목표일 겁니다. 물어 봅니다. '당신의 2009년 목표는 뭐였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2009년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1. 평범한 사람이 되자.
목표가 평범이라면 그동안 특별, 혹은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건방진 목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동안 보통 이하였기 때문에 평범함을 목표로 세웠다고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29살 12월 1일에 군대 생활(현역은 아니지만 여하튼 군대생활입니다)을 시작하여 2년 5개월 후인 올해 그러니까 2009년 4월 14일에 마감했습니다. 더 멀리 보면 지난 20대 내내 보통 이하(누구는 내 삶을 특별, 혹은 유별하다고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였기 때문에 참으로 절박한 목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도달하는 그 과정을 왜 너만 유별나게 표를 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4월 14일은 30대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20대의 뒤늦은 끝맞침이라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올해 4월 15일(날짜가 좀 의미심장힙니다...^^)부터 비로소 30대를 맞이했습니다. 법적 나이는 내일부터 33살이 되지만 느낌은 31살인 것입니다. 남들보다 4개월 짧은 30살의 기간을 보내고 31살이 되니 이제야 김광석 형님의 '서른 즈음에'가 실감납니다. 내가 보낸 것도 아닌데 시간이 그렇게 가버리네요. 아쉬움 보다는 부족함이 밀려와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여하튼 2009년에 전 평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표2. 밥 값을 하자.
올 초에 평범함과 나이값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평범함은 여전히 유효하나 나이값이라는 말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특정한 나이게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한다는 건 상식적으로나, 제 가치관으로나 맞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니 밥 값이 더 정확한 표현인 듯 합니다. 어찌보면 밥 값을 하기 위해 경제공부를 나름 열심히 한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선배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운동권들이 경제문제에 소홀했던 건(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자신의 밥 값이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계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밥이라는 게 거저 차려지는 게 아닌데, 수저 하나만 올리면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게 제 20대입니다. 거침 없어 보이고, 때론 스스로 멋있다는 말도 안되는 자뻑 모드에 취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제 밥 값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경제생활을 조금만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이 그다지 크지 못 했다는 반증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 적게 먹는 게 이 혼탁한 사회에서도, 제 건강에도 좋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많은 일을 하지도 않고 평소에 똑같이, 오히려 밥 값보다 더 많은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먹는 양과 소비량을 줄이기 못한다면 제 밥 값을 높이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2009년은 밥 값을 계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밥 값이 얼마 안된다는 사실에 반성이 드는 해였습니다. 목표 수행에 절반이 있겠느냐만은 좋게만 평가한다면 목표 달성을 위해 첫 삽을(요즘에는 삽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지만 여하튼) 뜬 셈입니다.
도광양회 韜光養晦
韜 : 감출 도, 칼집 도 光 : 빛 광 養 : 기를 양 晦 : 그믐 회
2010년 제 목표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위의 사자성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서글퍼런 날 빛(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을 칼집에 감추고 곰비임비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2010년의 목표로 잡은 것은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냉엄한 현실 파악과, 부족한 실력으로 설레발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날 빛을 감춘 곳이 칼집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명심합니다. 그건 언젠가는 그 칼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칼 날이 짧고 칼을 들 힘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칼을 빼내들어 베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계속적인 관찰과 성찰만이 칼날의 무뎌짐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09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과 함께 2010년에는 제대로 칼을 갈아보자는 말씀을 스스로와 저는 아는 많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릴레이 글쓰기의 다음 주자는 청년유니온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침햇살송(실명 거론 안함...^^)님으로 하겠습니다.
글의 기한은 3일이며, 글 작성 후 발행 시 태그로 '2010 결의충전'(한 칸 띄운 것 유의할 것)을 넣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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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 언잖은 일이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기분이 좀 나빴다는 이야기다. 기분을 블로그에 적는 건 찌질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뒤끝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떤 고정된 장소와 그 안에서 일하는 집단 전체를 회사 혹은 기업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집단을 지속하기 위한 질서와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질서와 규칙은 사람들의 판단, 행위 등의 범위를 한정하는 데 크게 그 기능이 있다. 다만 판단과 행위를 규제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단계가 존재하고 위로 갈수록 판단해야할 범위가 커진다.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라면 이런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반드시 설득해야만 그 일이 추진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분명하게 된다. 모두를 설득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하면 좋지만 모두를 설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또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듯이 한가지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는 건 편견일 수 있다. 즉,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소 속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원리로 일을 추진하게 된다. 잘 안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경제 용어를 가져다가 부연하자면 개인의 리스크를 헤지(hedge)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리스크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나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회사나 기업을 만드는 이유 역시 개인의 판단, 행위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합리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 아닌가. 따라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결정에서도 단계가 있고 수평적인 구조보다는 수직적인 구조를 취하게 된다. 이럴 경우 해당 단계에서의 책임은 해당 부서의 책임자가 지게 된다. 해당 부서의 책임자가 자신의 리스크를 헤지하는 방법은 사업을 기획한 사람을 타일러 사업 자체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보고해야 할 사람에게 빨리 해당 사업의 관련된 의사결정을 토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생활을 하다가 상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회사는 보고만 잘하면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다. 보고 후에 새로운 지시가 나오는 것이다. 너무 앞서가도 또 너무 늦게 가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게 기업이나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의 운영원리인 것이다.
현재 일하는 곳은 수평적 의사결정을 하는 집단인가. 회사나 기업과 같은 조직운영원리가 적용되는 곳인가. 양쪽에 걸쳐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구조가 매우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생산을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개인의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책임은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오늘 조금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동안 귀에 박힐 정도로 들은 이야기처럼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답은 간단하다. "내가 더 잘하면 된다."이다. 하지만 주체적인 것은 결코 일방향이 아니다. 집단 전체가 주체적일 때 개인의 주체적 판단, 행위 역시 그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기업과 회사와 같은 조직운영이라면 리스크를 명확히 하고 헤지 방법 역시 제공해야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일단 신뢰를 보내면서 일을 추진하고 향후 책임을 물으면 된다. 일의 추친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개인의 리스크가 아닌 그 집단의 리스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헤지 역시 집단이 해야지 개인에게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되면 안된다. 후자의 방식을 구사하는 회사는 결국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 리더십이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가를 묻기 전에, 그 사업에 따른 리스크를 정확히 계산했는지와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함께 기울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평가는 사업이 진행된 후에 하는 것이다. 난 일을 하자는 것이었지 평가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평가를 원한 거라면 평가를 하자고 하면 된다. 계획 논의가 평가처럼 진행되면 난감하다.
생각해 보니 내 기분은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난감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고정된 장소와 그 안에서 일하는 집단 전체를 회사 혹은 기업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집단을 지속하기 위한 질서와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질서와 규칙은 사람들의 판단, 행위 등의 범위를 한정하는 데 크게 그 기능이 있다. 다만 판단과 행위를 규제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단계가 존재하고 위로 갈수록 판단해야할 범위가 커진다.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라면 이런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반드시 설득해야만 그 일이 추진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분명하게 된다. 모두를 설득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하면 좋지만 모두를 설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또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듯이 한가지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는 건 편견일 수 있다. 즉,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소 속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원리로 일을 추진하게 된다. 잘 안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경제 용어를 가져다가 부연하자면 개인의 리스크를 헤지(hedge)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리스크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나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회사나 기업을 만드는 이유 역시 개인의 판단, 행위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합리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 아닌가. 따라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결정에서도 단계가 있고 수평적인 구조보다는 수직적인 구조를 취하게 된다. 이럴 경우 해당 단계에서의 책임은 해당 부서의 책임자가 지게 된다. 해당 부서의 책임자가 자신의 리스크를 헤지하는 방법은 사업을 기획한 사람을 타일러 사업 자체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보고해야 할 사람에게 빨리 해당 사업의 관련된 의사결정을 토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생활을 하다가 상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회사는 보고만 잘하면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다. 보고 후에 새로운 지시가 나오는 것이다. 너무 앞서가도 또 너무 늦게 가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게 기업이나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의 운영원리인 것이다.
현재 일하는 곳은 수평적 의사결정을 하는 집단인가. 회사나 기업과 같은 조직운영원리가 적용되는 곳인가. 양쪽에 걸쳐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구조가 매우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생산을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개인의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책임은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오늘 조금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동안 귀에 박힐 정도로 들은 이야기처럼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답은 간단하다. "내가 더 잘하면 된다."이다. 하지만 주체적인 것은 결코 일방향이 아니다. 집단 전체가 주체적일 때 개인의 주체적 판단, 행위 역시 그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기업과 회사와 같은 조직운영이라면 리스크를 명확히 하고 헤지 방법 역시 제공해야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일단 신뢰를 보내면서 일을 추진하고 향후 책임을 물으면 된다. 일의 추친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개인의 리스크가 아닌 그 집단의 리스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헤지 역시 집단이 해야지 개인에게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되면 안된다. 후자의 방식을 구사하는 회사는 결국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 리더십이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가를 묻기 전에, 그 사업에 따른 리스크를 정확히 계산했는지와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함께 기울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평가는 사업이 진행된 후에 하는 것이다. 난 일을 하자는 것이었지 평가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평가를 원한 거라면 평가를 하자고 하면 된다. 계획 논의가 평가처럼 진행되면 난감하다.
생각해 보니 내 기분은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난감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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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그래도 넌 무엇보다도 싸가지가 없어서 좋아....ㅎㅎ
난 아직 2단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