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7건
- 2010/07/20 가끔은 하늘만 봐도 좋은 날이 있다. (1)
- 2010/04/02 정리 혹은 반성 (2)
- 2010/03/23 [규탄] 청년유니온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 2010/03/19 봄(이라고 쓰고 겨울이라 읽는다) (5)
- 2010/02/26 운동의 경로, 감사의 표현, Let It Be (2)
- 2010/02/19 당원번호 : 24124 - 절반의 당원을 넘어
- 2010/01/29 2010년 1월 29일 : 나, 심장, 걸어가자.
- 2010/01/21 이런 정치인이 좋다.
- 2010/01/20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1)
- 2010/01/18 블로거 토론회. 당신을 기다립니다.
지난 주말 비가 왔다. 본격적인 무더위(사실 지금도 매우 덥다)가 오기 전에 제대로 비가 한 번 와 주길 기대했는데 역시 내 바램은 소용 없었다.
이번 주는 내내 퇴근 후 일정이 있어서 과외 역시 시간을 쪼개서 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부터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퇴근 길에 홍대 입구역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순간 하늘을 봤다. 뭔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역시나였다.
평소에는 잘 찍지도 않고, 연자씨는 나에게 참 사진 못 찍는다고 비난했지만 어제는 어떻게 들이대도 느낌이 살아났다. 아이폰으로 찍었는대도 아주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몇 장 더. 지하철에서 내내 이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재충전했다.
이 사진은 예전에 서울-부산 국토대장정을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 사진은 학생운동할 때 밤새 술 먹고 새벽 청량리-원주 무궁화호를 탔다가 내리지 못하고 결국 '나 돌아갈래'의 제천역까지 갔었다. 그 때 다시 기차를 타기 전 역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 때 기억이 나는 사진.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주는 내내 퇴근 후 일정이 있어서 과외 역시 시간을 쪼개서 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부터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퇴근 길에 홍대 입구역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순간 하늘을 봤다. 뭔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역시나였다.
평소에는 잘 찍지도 않고, 연자씨는 나에게 참 사진 못 찍는다고 비난했지만 어제는 어떻게 들이대도 느낌이 살아났다. 아이폰으로 찍었는대도 아주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몇 장 더. 지하철에서 내내 이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재충전했다.
이 사진은 예전에 서울-부산 국토대장정을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 사진은 학생운동할 때 밤새 술 먹고 새벽 청량리-원주 무궁화호를 탔다가 내리지 못하고 결국 '나 돌아갈래'의 제천역까지 갔었다. 그 때 다시 기차를 타기 전 역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 때 기억이 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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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로는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정말 슬퍼하고 있는 걸까. 다들 누군가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서 장단을 맞추긴 하지만 마음으로는 별로 감동적이지 않을 때 나는 그 누군가를 질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더 잘났다고 거만 떨고 있는 것일까.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늘로 갔을 때 슬프지 않았다. 이런 내 감정 때문에 사람들과 약간의 언쟁도 있었다. 근데 정말 슬프지 않은데 어떻게 하나. 얼마 전 고대 정경대 앞에 김예슬씨의 대자보가 붙었다고 그 내용이 정말 대단하다고, 민경우 선배님은 생각의 깊이 다르다며 감동적으로 말씀하셨다. 어제 선배님에게 맥주 한 잔 놓고 이야기했다. 저는 김예슬씨가 별로 감동적이지 않다고 말이다. 그가 대학을 버리고 싸우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옳다. 좋다. 뭐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게 날 감동시키지 않았다.
2. 왜 그랬을까. 최근에 든 생각은 나는 왜 그런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감정의 구조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3월 한 달 동안의 힘듦과 어제의 토론 등을 통해 몇가지를 발견, 정리했다.
3. 모든 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내가 꽤나 뛰어난 운동권이라고 믿었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아직 내가 주인공이 된 영화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영화 개봉을 가로 막는 사람의 죽음을 내가 왜 슬퍼해야 하는가.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조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대자보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나였다. 모든 착오와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착각과 오만이다.
4. 난 여전히 민경우 선배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주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운오리나 몇몇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김예슬씨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만 놓고 보면, 그리 감흥이 없다. 그건 내가 아직 착각과 오만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 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나는 조연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한다.(어쩌면 조연도 못 할 수 있다. 그럼 액션배우라도 해야지 뭐) 중요한 건 주인공이 아니라 영화 자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스스로 짚고 넘어가는 건. 그렇다면 김예슬씨의 대자보에 감흥을 느끼거나 무언가 새로움을 발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분들이 나 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은 김예슬씨의 정치적 발언의 진정성이 타인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꽤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지만 그렇게 쉽게 무언가에 확 가진 못한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조금 답답할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시간도 필요하고 정리가 필요한 법이다. 자신이 정리되었다고 혹은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너는 왜 못하냐고..."라고 말하면 답답한 일이다.
5. 마지막으로 운동이 아니라 운동가의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는 타인을 관찰하거나 평가할 때 사람으로 평가한 게 아니라 운동가로 평가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김예슬씨나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를 사람으로 온전히 평가하지 못하고 운동가의 잣대로 평가했다. 그러다 보니 별 감흥도, 감동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오만과 편견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운동가라면 나는 당신을 운동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게 운동가의 자세라고 믿는다. 어제 토론 및 논쟁은 이론적인 정합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운동가인가 아닌가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마지막 말도 내 오만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늘로 갔을 때 슬프지 않았다. 이런 내 감정 때문에 사람들과 약간의 언쟁도 있었다. 근데 정말 슬프지 않은데 어떻게 하나. 얼마 전 고대 정경대 앞에 김예슬씨의 대자보가 붙었다고 그 내용이 정말 대단하다고, 민경우 선배님은 생각의 깊이 다르다며 감동적으로 말씀하셨다. 어제 선배님에게 맥주 한 잔 놓고 이야기했다. 저는 김예슬씨가 별로 감동적이지 않다고 말이다. 그가 대학을 버리고 싸우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옳다. 좋다. 뭐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게 날 감동시키지 않았다.
2. 왜 그랬을까. 최근에 든 생각은 나는 왜 그런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감정의 구조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3월 한 달 동안의 힘듦과 어제의 토론 등을 통해 몇가지를 발견, 정리했다.
3. 모든 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내가 꽤나 뛰어난 운동권이라고 믿었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아직 내가 주인공이 된 영화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영화 개봉을 가로 막는 사람의 죽음을 내가 왜 슬퍼해야 하는가.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조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대자보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나였다. 모든 착오와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착각과 오만이다.
4. 난 여전히 민경우 선배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주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운오리나 몇몇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김예슬씨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만 놓고 보면, 그리 감흥이 없다. 그건 내가 아직 착각과 오만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 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나는 조연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한다.(어쩌면 조연도 못 할 수 있다. 그럼 액션배우라도 해야지 뭐) 중요한 건 주인공이 아니라 영화 자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스스로 짚고 넘어가는 건. 그렇다면 김예슬씨의 대자보에 감흥을 느끼거나 무언가 새로움을 발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분들이 나 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은 김예슬씨의 정치적 발언의 진정성이 타인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꽤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지만 그렇게 쉽게 무언가에 확 가진 못한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조금 답답할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시간도 필요하고 정리가 필요한 법이다. 자신이 정리되었다고 혹은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너는 왜 못하냐고..."라고 말하면 답답한 일이다.
5. 마지막으로 운동이 아니라 운동가의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는 타인을 관찰하거나 평가할 때 사람으로 평가한 게 아니라 운동가로 평가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김예슬씨나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를 사람으로 온전히 평가하지 못하고 운동가의 잣대로 평가했다. 그러다 보니 별 감흥도, 감동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오만과 편견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운동가라면 나는 당신을 운동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게 운동가의 자세라고 믿는다. 어제 토론 및 논쟁은 이론적인 정합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운동가인가 아닌가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마지막 말도 내 오만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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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2010/04/09 11:34
여전.... 하하.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 돌아온 정성일에게 정은임이 했던 이야기가 바로 "여전하시네요"였음.
벚꽃과 커피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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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이 노동부 노동조합 설립신고하고 나서 오늘 그 결과가 나온다고 하여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노동부 이 놈들은 안 되겠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원이 되어 보나 했는데 어렵네요.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설립신고도 세차례나 반려하더니. 역시 MB정부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내일(24일) 오전 11시에 과천정부청사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가야하는데...ㅜㅜ
아래는 청년유니온 카페(http://cafe.daum.net/alabor)에서 퍼온 겁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원이 되어 보나 했는데 어렵네요.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설립신고도 세차례나 반려하더니. 역시 MB정부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내일(24일) 오전 11시에 과천정부청사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가야하는데...ㅜㅜ
아래는 청년유니온 카페(http://cafe.daum.net/alabor)에서 퍼온 겁니다.
<성 명 서>
대한민국 청년들의 단결권을 짓밟은 노동부를 규탄한다
오늘 노동부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한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는 이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노동부의 오늘과 같은 행태를 준엄하게 규탄하는 바이다.
노동부의 청년유니온에 대한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자의적 판단일 뿐이며 청년들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반드시 막아 나서겠다는식의 악의로 가득 차있다.
첫째, 노동부는 청년유니온의 강령과 규약에 “대한민국 청년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지위 제고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및 한반도의 평화 실현”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정치활동이 주된 목적과 사업이기 때문에 설립신고를 반려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많은 노동조합 규약 전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강령과 규약이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한 것은 황당한 이유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중 청년유니온의 강령과 규약에 적시하고 있는 수준의 내용을 담지 않고 있는 노동조합은 단 한군데도 없다.
이는 여타 노조의 설립신고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을 들어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것으로 유독 청년유니온만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있다.
청년노동자들의 노동권이 개선되는 것이 곧 청년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제고되는 것이다. 또한 만연한 청년실업이 해결되고 청년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군복무 문제부터 이로 인한 늦은 취업문제등이 청년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인데 청년노동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또한 반려사유중 하나인 구직중인 청년노동자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아니 청년실업자를 이렇게 많이 양산해 구직중인 청년노동자가 다수가 되버린 사회현실에 대한 책임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데 이를 청년들에게 뒤짚어 씌우는 것인가? 청년실업이 없어져서 구직중인 청년노동자의 숫자가 적어지게 되면 이는 사회전체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구직중은 청년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고용보장과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적극 권장해야하는 일이다. 또한 구직중은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은 노동법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미 대법원등의 판례는 구직중인 노동자도 노동조합 가입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오늘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반려함으로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권을 확보하고 권리를 찾기위한 몸부림을 짓밟은 것이다. 또한 100만이 넘어간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해결의지가 조금도 없음을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노동부가 대한민국 최초의 청년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한것은 법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해 청년실업자가 급증하고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다수가 되어 오히려 청년노동자들의 권리향상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권의 정책실패를 여실히 드러내주기 때문이 아닌가?
노조설립의 신고제도는 노동자는 자유로이 노조를 조직할 수 있다고 하여 자유설립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설립신고 시 노조는 설립신고서와 규약을 첨부하여 노동부에 제출하고,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확보를 위한 형식적 심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청년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년유니온에 대한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로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활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크나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100만에 달하는 청년실업과 청년노동자 2명중 1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엄혹한 현실앞에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고 활동해나가는 것은 역사적 대세이며 이미 거스를수 없는 흐름이다. 청년유니온은 이런 시대적 흐름앞에 정정당당하게 청년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활동해나갈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라는 비상식적·불법적 행태에 대해 자성하고,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조합활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 2010년 3월 23일 청년유니온 -
대한민국 청년들의 단결권을 짓밟은 노동부를 규탄한다
오늘 노동부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한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는 이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노동부의 오늘과 같은 행태를 준엄하게 규탄하는 바이다.
노동부의 청년유니온에 대한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자의적 판단일 뿐이며 청년들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반드시 막아 나서겠다는식의 악의로 가득 차있다.
첫째, 노동부는 청년유니온의 강령과 규약에 “대한민국 청년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지위 제고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및 한반도의 평화 실현”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정치활동이 주된 목적과 사업이기 때문에 설립신고를 반려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많은 노동조합 규약 전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강령과 규약이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한 것은 황당한 이유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중 청년유니온의 강령과 규약에 적시하고 있는 수준의 내용을 담지 않고 있는 노동조합은 단 한군데도 없다.
이는 여타 노조의 설립신고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을 들어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것으로 유독 청년유니온만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있다.
청년노동자들의 노동권이 개선되는 것이 곧 청년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제고되는 것이다. 또한 만연한 청년실업이 해결되고 청년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군복무 문제부터 이로 인한 늦은 취업문제등이 청년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인데 청년노동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또한 반려사유중 하나인 구직중인 청년노동자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아니 청년실업자를 이렇게 많이 양산해 구직중인 청년노동자가 다수가 되버린 사회현실에 대한 책임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데 이를 청년들에게 뒤짚어 씌우는 것인가? 청년실업이 없어져서 구직중인 청년노동자의 숫자가 적어지게 되면 이는 사회전체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구직중은 청년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고용보장과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적극 권장해야하는 일이다. 또한 구직중은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은 노동법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미 대법원등의 판례는 구직중인 노동자도 노동조합 가입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오늘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반려함으로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권을 확보하고 권리를 찾기위한 몸부림을 짓밟은 것이다. 또한 100만이 넘어간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해결의지가 조금도 없음을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노동부가 대한민국 최초의 청년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한것은 법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해 청년실업자가 급증하고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다수가 되어 오히려 청년노동자들의 권리향상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권의 정책실패를 여실히 드러내주기 때문이 아닌가?
노조설립의 신고제도는 노동자는 자유로이 노조를 조직할 수 있다고 하여 자유설립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설립신고 시 노조는 설립신고서와 규약을 첨부하여 노동부에 제출하고,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확보를 위한 형식적 심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청년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년유니온에 대한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로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활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크나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100만에 달하는 청년실업과 청년노동자 2명중 1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엄혹한 현실앞에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고 활동해나가는 것은 역사적 대세이며 이미 거스를수 없는 흐름이다. 청년유니온은 이런 시대적 흐름앞에 정정당당하게 청년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활동해나갈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라는 비상식적·불법적 행태에 대해 자성하고, 대한민국 청년노동자들의 조합활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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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로만 보면 봄이 오고도 남아야했다. 사는 집에 대학 근처라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개강과 새내기 입학으로 연일 북적인다. 나무에도 싹이 나고 밤이 오는 시간도 많이 늦춰졌다.
나는 매년 봄이 오면 봄에 대한 글을 쓰고 했다.
200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6년전이니까 내가 27살 때다. 당시 나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정치참여와 투표율을 높이겠다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아마 여의도에서 캠페인을 하는 날이었을 거다. 정치는 축제라며,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행사해야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는데. 돌아오는 길에 벚꽃 지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랑 헤어졌는지 아니면 당시 기분이 꽤나 우울했는지. 여하튼 봄이 왔을 때 벚꽃이 절정일 때 나는 벚꽃 지는 모습을 봤다. 그러니 참 궁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2005년에도 나는 봄을 맞으며 이미 가버릴 봄날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2005년에는 담당지역이 강원도라서 청량리역에서 기차타고 춘천, 원주를 참 많이 다녀왔다. 봄 날에 그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을 참 아름답다. 물론 대학생들이 MT를 간다고 왁자지걸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봄날의 기차를 참 좋은 느낌이다. 곧 원주에 한 번 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급적이면 기차를 타고 싶은데 그렇게 될 지는 모르겠다. 기차를 타면 '그 해 봄날'이 생각날 것만 같다.
2006년의 봄은 약간 설렘 속에 맞이한 듯 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와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내가 매년 마다 한 번씩 보는 영화인데, 당시에 유뉴스(unews.co.kr)에 기고한 글이기도 하다. 당신에는 시간이 흐르면, 여하튼 그 시간들을 보내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성장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보내는 한 이유기도 했겠지만 서른이 넘은 후에는 시간을 보내도 성장하는 지 퇴보하는 지 영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많다. 정신없이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을 나오게 되면 결국 처음 들어간 곳인데 시간은 훌쩍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 하지만 매번 똑같은 골목길에 가더라도 조금은 다르다. 그 골목길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어느 지점에서는 좀 더 오래 머물기도 하고 금새 지나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 골목이 너무 지겨워질 때 우리는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우가 현우로 넘어가는 듯이 말이다.
2007년 봄에 내가 무엇을 보았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누구가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여하튼 이전까지의 봄들이 꽤나 고통 속에서 왔던 모양인데 2007년은 조금 가벼워졌다고 하니 참 바람직하다.
2010년 봄(이라고 적고 겨울이라 읽는다)은 아직 오지도 가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 2월까지 정말 정신없이 왔다. 다들 하는 거지만, 출근하고 대학원 공부하고, 이젠 과외도 하나 하고, 물론 연애도 하고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어려운 것들인데. 무언가를 놓아야 다른 걸 더 얻을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실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버려야 할 건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하나를 버리는 게 아니다. 정작 내가 버려야 하는 건, 조바심 혹은 강박, 근거없는 패배감 같은 것이다. 나는 조금은 그 예전의 오만한 나로 좀 돌아가야 겠다.
봄날은 결국 낮술을 한 잔 먹어야 온다. 날씨 좋은 날, 잔디밭에서 탕수육과 고량주를 먹어야 진짜 봄날을 실감할 것 같다. 곧 오길 기대한다.
덧)
한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다가 다시 쓰려니 이렇게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모아서 올리는 조금은 성의 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나는 매년 봄이 오면 봄에 대한 글을 쓰고 했다.
나에겐 벚꽃 지는 것만 보이네...
2004.04.10 20:58
투표참여 캠페인이 여의도 벚꽃 축제가 열리는 여의도 공원에서 있었다. 형식도 없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사람들에게 4월 15일에 투표를 하자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자리였다.
무슨 야시장에 온 듯... 난 캠페인보다는 그냥 사람 구경하며 벚꽃을 쳐다보았다.
참 궁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동안 뭐했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
지금 생각하면 뭐하나... 나에겐 벚꽃 지는 것만 보이더라...
2004.04.10 20:58
투표참여 캠페인이 여의도 벚꽃 축제가 열리는 여의도 공원에서 있었다. 형식도 없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사람들에게 4월 15일에 투표를 하자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자리였다.
무슨 야시장에 온 듯... 난 캠페인보다는 그냥 사람 구경하며 벚꽃을 쳐다보았다.
참 궁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동안 뭐했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
지금 생각하면 뭐하나... 나에겐 벚꽃 지는 것만 보이더라...
200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6년전이니까 내가 27살 때다. 당시 나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정치참여와 투표율을 높이겠다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아마 여의도에서 캠페인을 하는 날이었을 거다. 정치는 축제라며,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행사해야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는데. 돌아오는 길에 벚꽃 지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랑 헤어졌는지 아니면 당시 기분이 꽤나 우울했는지. 여하튼 봄이 왔을 때 벚꽃이 절정일 때 나는 벚꽃 지는 모습을 봤다. 그러니 참 궁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 해 봄날
2005.02.19 21:06
아는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계속 듣게 되는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그 노래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부른 '그 해 봄에'라는 노래인데 아주 느낌 팍! 인 노래이다. 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노래가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그 해 봄에'. 그러나 느낌은 슬슬 봄이 오다가 확~하고 봄이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봄날은 간다'인 것 같다. 누군가 그 사람과 기다리던 봄날에 길도 걷고 밥도 먹었고 영화도 한편 보았을 것이다. 봄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차리면 봄이 가버리고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그리곤 여름과 가을, 겨울을 기다린다.
기차를 타다가 긴 터널을 지나게 되면 답답해서 빨리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밖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막상 밖을 보아도 별 다른게 없으니 그냥 씨익~하고 한번 웃어준다. 그 사람이 보라고 말이다.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도 언젠가의 '그 해 봄에' 기차를 타고 있었거나 누군가와 길을 걸었거나 밥을 먹었거나 그랬을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내가 그랬을 것만 같아서 멍청하게도 며칠 남지 않은 봄을 기다리게 된다. 난 아마 올해 봄에 벚꽃을 조금 볼 것이고 딸기도 먹게 될 것이고 기차도 탈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걷기도 할 것이다. 아마 그 언젠가의 또 '그 해 봄날'을 위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벌써 봄날이 오고 있고 곧 가버릴 것 같아서 참으로 아쉽다. 그래서 '그 해 봄날'이다. 영원히 '그 해 봄날'이다.
2005.02.19 21:06
아는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계속 듣게 되는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그 노래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부른 '그 해 봄에'라는 노래인데 아주 느낌 팍! 인 노래이다. 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노래가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그 해 봄에'. 그러나 느낌은 슬슬 봄이 오다가 확~하고 봄이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봄날은 간다'인 것 같다. 누군가 그 사람과 기다리던 봄날에 길도 걷고 밥도 먹었고 영화도 한편 보았을 것이다. 봄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차리면 봄이 가버리고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그리곤 여름과 가을, 겨울을 기다린다.
기차를 타다가 긴 터널을 지나게 되면 답답해서 빨리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밖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막상 밖을 보아도 별 다른게 없으니 그냥 씨익~하고 한번 웃어준다. 그 사람이 보라고 말이다.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도 언젠가의 '그 해 봄에' 기차를 타고 있었거나 누군가와 길을 걸었거나 밥을 먹었거나 그랬을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내가 그랬을 것만 같아서 멍청하게도 며칠 남지 않은 봄을 기다리게 된다. 난 아마 올해 봄에 벚꽃을 조금 볼 것이고 딸기도 먹게 될 것이고 기차도 탈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걷기도 할 것이다. 아마 그 언젠가의 또 '그 해 봄날'을 위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벌써 봄날이 오고 있고 곧 가버릴 것 같아서 참으로 아쉽다. 그래서 '그 해 봄날'이다. 영원히 '그 해 봄날'이다.
2005년에도 나는 봄을 맞으며 이미 가버릴 봄날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2005년에는 담당지역이 강원도라서 청량리역에서 기차타고 춘천, 원주를 참 많이 다녀왔다. 봄 날에 그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을 참 아름답다. 물론 대학생들이 MT를 간다고 왁자지걸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봄날의 기차를 참 좋은 느낌이다. 곧 원주에 한 번 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급적이면 기차를 타고 싶은데 그렇게 될 지는 모르겠다. 기차를 타면 '그 해 봄날'이 생각날 것만 같다.
꽃피는 봄이오면 봄날은 간다
2006.03.25 14:01
날씨는 야속하게도 아직 쌀쌀하지만 시간으로 보면 봄이다. 저 멀리 남쪽의 캠퍼스에는 벌써 꽃들이 피고 있다. 서울에도 힘겹게 싸우듯 교정에 하나 둘씩 녹색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오는 봄, 누가 보고 싶어서 봄, 당신은 봄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땅 속에 숨겨놓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오는 봄나물, 순간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며 미치듯 자신을 뽐내는 벚꽃들, 눈 녹은 자리에 생기는 얼룩얼룩한 지난 추억, 재잘거리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덤비는 새내기, 혹시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수 많은 그 혹은 그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겨울에 은수(이영애)를 처음 만났다. 눈내리는 소리, 두꺼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났다. 그리곤 영화처럼 사랑에 빠진다. 추운 겨울날 소주 한 잔 기울이다 갑자기 그 사람이 보고 싶어 돈벌이 시원찮은 친구 택시기사를 불러 갑자기 강릉에 가자고 한다. 강릉에서 만난 상우와 은수는 너무나 좋은 나머지 껴안고 또 껴안고, 바닷가 앞에 위치한 은수의 집은 모든게 꼭 영화처럼 완벽해 보인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현우(최민식)는 연희(김호정)와 겨울에 만나 답답한 이별을 한다. 현우가 사준 반지를 팔아 술을 마셨다는 연희에게 현우는 행복하라며 쓴 소주 한잔 뒤의 표정을 지으며 애써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리곤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는지 아니면 자신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 자포자기한 것인지 갑자기 현우는 삼척에 있는 도계중학교 관현악부 선생으로 도망간다.
누군가는 겨울에 사랑을 하고 또 누군가는 겨울에 이별을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이별은 인생을 망가지게 하기도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겨울에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영화 <꽃피는 봄이오면>은 겨울에 이별을 하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정도에서 영화의 결론을 어느정도 예감하게 된다. 겨울에 시작된 사랑은 봄에 끝난다. 겨울에 끝난 사랑은 봄에 다시 시작된다. 장소는 서울과 강원도. 서울과 강원도는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편의 영화를 봤겠지만 사실 이 두 영화는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봄이라는 시간을 정해 놓고 인물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상우와 은수의 관계가 아니다. 또한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도 현우와 연희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상우와 할머니의 관계이며 현우와 엄마의 관계다. 상우의 할머니는 흑백의 옛 할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사진만을 바라보며 기차역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돌아가시기 직전 상우에게 ‘한번 지나간 버스와 여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 결론을 던져주고 이 세상을 떠난다. 상우는 그러고 나서 다시 같이 지내자며 돌아온 은수를 담담하게 그냥 보내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과 시간의 흐름은 상우로 하여금 사랑과 이별의 공식이 세상살이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이것은 현우에게도 마찬가지인데, 현우는 삼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날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를 먹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절규하듯이 말한다. 엄마는 ‘넌 지금이 시작이야’라며 한 단계 높은 인생의 면을 보여준다. 현우는 울지만 깨달았다. 과거가 없이는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말이다. 삼척에 내리는 눈마저 비로 보였던 현우가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봄은 과연 무엇인가. 상우는 ‘겨울-봄-여름-가을-겨울’을 경과한 후에 성장한다. 현우는 같은 ‘겨울’이라는 짧은 시간에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아직 20대인 상우에게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상우에게 그 걸음걸이를 가르쳐 준다. 다시 그 사람이 나타나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30대 후반인 현우에게는 조금 다르다. 예술은 천박하면 안되기에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우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게도 가끔씩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연희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못난 가지를 툭툭 쳐내듯 그렇게 감내해 온 것이 바로 현우의 겨울이고 시간이다.
그렇게 보면 이 두 편의 영화는 연속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상우는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가지게 된다. 처음의 현우처럼 말이다. 현우는 원칙과 세상의 부조화 속에서 힘들어하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20대를 경과하여 30-40대로 넘어간다는 것은 이런게 아니겠냐며 우리에게 이 두 편의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 서글픈 일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봄이라는 시간과 사랑과 이별이라는 사건을 통해 조용히 벚꽃이 흩날리듯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지혜를 얻으면 벌써 청춘이 아니더라. 그래서 꽃피는 봄이 오면 봄날은 가고야 만다. 청춘은 지나가야 그 때가 꽃피는 봄이었다는 것을 알더라. 그래서 봄날이 가야 꽃피는 봄이 아쉬운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현재 봄날이라는 것. 당신이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해도, 잊어버린 꿈을 현재 찾고 있지 못한다 해도, 지난 겨울 이별을 만나 현재 괴로워하고 있어도 말이다. 그러니 난 캠퍼스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에게 또 한가지 물어본다. 이 봄에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아니면 무엇이 지나가길 바라는가. 잘 모르겠다면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리며 좋은 날 골라 낮술이라도 한잔 하시라. 그게 봄이다.
현우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넌 전화를 받았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연희 : 왜 걸었어
현우 : 왜 걸기는... 뭐하냐 바뻐? 야 이따가 오빠가 술 한잔 살테니까 나올래?
연희 : 술?
현우 : 응?
연희 : 술을 갑자기 왜?
현우 : 뭐 갑자기 뭐 술 마실수도 있지? 야... 봄이거든. 참 하하하... 참 너 학원 다시 차렸다매
연 희 : 응
현우 : 야 혹시 색스폰 강사나 트럼펫 강사 필요하지 않냐? 내가 물 좋고 삼삼한 강사 하나 알고 있는데
연 희 : 누구?
현우 : 누구냐고? 이씨고 이름은 현우라고... 하하하
2006.03.25 14:01
날씨는 야속하게도 아직 쌀쌀하지만 시간으로 보면 봄이다. 저 멀리 남쪽의 캠퍼스에는 벌써 꽃들이 피고 있다. 서울에도 힘겹게 싸우듯 교정에 하나 둘씩 녹색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오는 봄, 누가 보고 싶어서 봄, 당신은 봄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땅 속에 숨겨놓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오는 봄나물, 순간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며 미치듯 자신을 뽐내는 벚꽃들, 눈 녹은 자리에 생기는 얼룩얼룩한 지난 추억, 재잘거리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덤비는 새내기, 혹시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수 많은 그 혹은 그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겨울에 은수(이영애)를 처음 만났다. 눈내리는 소리, 두꺼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났다. 그리곤 영화처럼 사랑에 빠진다. 추운 겨울날 소주 한 잔 기울이다 갑자기 그 사람이 보고 싶어 돈벌이 시원찮은 친구 택시기사를 불러 갑자기 강릉에 가자고 한다. 강릉에서 만난 상우와 은수는 너무나 좋은 나머지 껴안고 또 껴안고, 바닷가 앞에 위치한 은수의 집은 모든게 꼭 영화처럼 완벽해 보인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현우(최민식)는 연희(김호정)와 겨울에 만나 답답한 이별을 한다. 현우가 사준 반지를 팔아 술을 마셨다는 연희에게 현우는 행복하라며 쓴 소주 한잔 뒤의 표정을 지으며 애써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리곤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는지 아니면 자신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 자포자기한 것인지 갑자기 현우는 삼척에 있는 도계중학교 관현악부 선생으로 도망간다.
누군가는 겨울에 사랑을 하고 또 누군가는 겨울에 이별을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이별은 인생을 망가지게 하기도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겨울에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영화 <꽃피는 봄이오면>은 겨울에 이별을 하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정도에서 영화의 결론을 어느정도 예감하게 된다. 겨울에 시작된 사랑은 봄에 끝난다. 겨울에 끝난 사랑은 봄에 다시 시작된다. 장소는 서울과 강원도. 서울과 강원도는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편의 영화를 봤겠지만 사실 이 두 영화는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봄이라는 시간을 정해 놓고 인물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상우와 은수의 관계가 아니다. 또한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도 현우와 연희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상우와 할머니의 관계이며 현우와 엄마의 관계다. 상우의 할머니는 흑백의 옛 할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사진만을 바라보며 기차역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돌아가시기 직전 상우에게 ‘한번 지나간 버스와 여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 결론을 던져주고 이 세상을 떠난다. 상우는 그러고 나서 다시 같이 지내자며 돌아온 은수를 담담하게 그냥 보내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과 시간의 흐름은 상우로 하여금 사랑과 이별의 공식이 세상살이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이것은 현우에게도 마찬가지인데, 현우는 삼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날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를 먹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절규하듯이 말한다. 엄마는 ‘넌 지금이 시작이야’라며 한 단계 높은 인생의 면을 보여준다. 현우는 울지만 깨달았다. 과거가 없이는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말이다. 삼척에 내리는 눈마저 비로 보였던 현우가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봄은 과연 무엇인가. 상우는 ‘겨울-봄-여름-가을-겨울’을 경과한 후에 성장한다. 현우는 같은 ‘겨울’이라는 짧은 시간에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아직 20대인 상우에게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상우에게 그 걸음걸이를 가르쳐 준다. 다시 그 사람이 나타나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30대 후반인 현우에게는 조금 다르다. 예술은 천박하면 안되기에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우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게도 가끔씩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연희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못난 가지를 툭툭 쳐내듯 그렇게 감내해 온 것이 바로 현우의 겨울이고 시간이다.
그렇게 보면 이 두 편의 영화는 연속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상우는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가지게 된다. 처음의 현우처럼 말이다. 현우는 원칙과 세상의 부조화 속에서 힘들어하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20대를 경과하여 30-40대로 넘어간다는 것은 이런게 아니겠냐며 우리에게 이 두 편의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 서글픈 일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봄이라는 시간과 사랑과 이별이라는 사건을 통해 조용히 벚꽃이 흩날리듯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지혜를 얻으면 벌써 청춘이 아니더라. 그래서 꽃피는 봄이 오면 봄날은 가고야 만다. 청춘은 지나가야 그 때가 꽃피는 봄이었다는 것을 알더라. 그래서 봄날이 가야 꽃피는 봄이 아쉬운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현재 봄날이라는 것. 당신이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해도, 잊어버린 꿈을 현재 찾고 있지 못한다 해도, 지난 겨울 이별을 만나 현재 괴로워하고 있어도 말이다. 그러니 난 캠퍼스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에게 또 한가지 물어본다. 이 봄에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아니면 무엇이 지나가길 바라는가. 잘 모르겠다면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리며 좋은 날 골라 낮술이라도 한잔 하시라. 그게 봄이다.
현우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넌 전화를 받았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연희 : 왜 걸었어
현우 : 왜 걸기는... 뭐하냐 바뻐? 야 이따가 오빠가 술 한잔 살테니까 나올래?
연희 : 술?
현우 : 응?
연희 : 술을 갑자기 왜?
현우 : 뭐 갑자기 뭐 술 마실수도 있지? 야... 봄이거든. 참 하하하... 참 너 학원 다시 차렸다매
연 희 : 응
현우 : 야 혹시 색스폰 강사나 트럼펫 강사 필요하지 않냐? 내가 물 좋고 삼삼한 강사 하나 알고 있는데
연 희 : 누구?
현우 : 누구냐고? 이씨고 이름은 현우라고... 하하하
2006년의 봄은 약간 설렘 속에 맞이한 듯 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와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내가 매년 마다 한 번씩 보는 영화인데, 당시에 유뉴스(unews.co.kr)에 기고한 글이기도 하다. 당신에는 시간이 흐르면, 여하튼 그 시간들을 보내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성장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보내는 한 이유기도 했겠지만 서른이 넘은 후에는 시간을 보내도 성장하는 지 퇴보하는 지 영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많다. 정신없이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을 나오게 되면 결국 처음 들어간 곳인데 시간은 훌쩍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 하지만 매번 똑같은 골목길에 가더라도 조금은 다르다. 그 골목길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어느 지점에서는 좀 더 오래 머물기도 하고 금새 지나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 골목이 너무 지겨워질 때 우리는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우가 현우로 넘어가는 듯이 말이다.
네번째 봄
2007.03.27 10:37
어제 아침에 왠일로 일찍 일어나게 되어 밖에 나기기 전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네이버 날씨 정보를 보았다. 가볍게 입고 나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저녁에 돌아오면서 좀 걷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저온도 3도, 최고온도 14도라고 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라 판단하고 외투를 입지 않고 나왔다. 아침에는 조금 쌀쌀했고 점심에는 피곤해서 바로 들어왔고 저녁에는 일이 있었다. 몸살기운이 몸에 돌고 있었다.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래서 전화 건너편에서 돌아오는 목소리들에 시쿵둥한 반응을 보이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마냥 졸았다. 대충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눈이 떠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구를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 눈이 번쩍 뜨이며 미소를 건냈다.
20분 정도 걸었나보다. 그 짧은 거리에서 나는 네번째 봄을 만났다. 3년 전 그해 봄은 지독한 어려움 후에 찾아왔다. 2년전 그해 봄은 지독한 자책 후에 찾아왔다. 1년전 그해 봄은 지독한 패배 뒤에 찾아왔다. 이번 네번째 봄은 지독하지는 않다. 다만,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어찌보면 나에게 봄이란 긴 터널의 마지막 같은 것이다. 그런데 봄은 그 터널 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터널 끝에서 끝난다. 그래서 항상 그해 봄이다.
어제 밤에 네번째 봄을 만나고 나니 또 봄이 가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프기도 하고 앞으로는 조금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터널 끝에는 총천연색의 세상이 존재하겠지만, 그래서 조금 설레일지도 모르지만 눈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기차를 타고 전화를 하면 터널을 지날때 우리는 잠시 세상과 단절된다. 잠시의 쉼이다. 봄은 바로 그 잠시 쉼과 같기에 달콤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2007.03.27 10:37
어제 아침에 왠일로 일찍 일어나게 되어 밖에 나기기 전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네이버 날씨 정보를 보았다. 가볍게 입고 나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저녁에 돌아오면서 좀 걷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저온도 3도, 최고온도 14도라고 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라 판단하고 외투를 입지 않고 나왔다. 아침에는 조금 쌀쌀했고 점심에는 피곤해서 바로 들어왔고 저녁에는 일이 있었다. 몸살기운이 몸에 돌고 있었다.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래서 전화 건너편에서 돌아오는 목소리들에 시쿵둥한 반응을 보이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마냥 졸았다. 대충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눈이 떠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구를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 눈이 번쩍 뜨이며 미소를 건냈다.
20분 정도 걸었나보다. 그 짧은 거리에서 나는 네번째 봄을 만났다. 3년 전 그해 봄은 지독한 어려움 후에 찾아왔다. 2년전 그해 봄은 지독한 자책 후에 찾아왔다. 1년전 그해 봄은 지독한 패배 뒤에 찾아왔다. 이번 네번째 봄은 지독하지는 않다. 다만,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어찌보면 나에게 봄이란 긴 터널의 마지막 같은 것이다. 그런데 봄은 그 터널 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터널 끝에서 끝난다. 그래서 항상 그해 봄이다.
어제 밤에 네번째 봄을 만나고 나니 또 봄이 가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프기도 하고 앞으로는 조금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터널 끝에는 총천연색의 세상이 존재하겠지만, 그래서 조금 설레일지도 모르지만 눈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기차를 타고 전화를 하면 터널을 지날때 우리는 잠시 세상과 단절된다. 잠시의 쉼이다. 봄은 바로 그 잠시 쉼과 같기에 달콤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2007년 봄에 내가 무엇을 보았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누구가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여하튼 이전까지의 봄들이 꽤나 고통 속에서 왔던 모양인데 2007년은 조금 가벼워졌다고 하니 참 바람직하다.
2010년 봄(이라고 적고 겨울이라 읽는다)은 아직 오지도 가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 2월까지 정말 정신없이 왔다. 다들 하는 거지만, 출근하고 대학원 공부하고, 이젠 과외도 하나 하고, 물론 연애도 하고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어려운 것들인데. 무언가를 놓아야 다른 걸 더 얻을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실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버려야 할 건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하나를 버리는 게 아니다. 정작 내가 버려야 하는 건, 조바심 혹은 강박, 근거없는 패배감 같은 것이다. 나는 조금은 그 예전의 오만한 나로 좀 돌아가야 겠다.
봄날은 결국 낮술을 한 잔 먹어야 온다. 날씨 좋은 날, 잔디밭에서 탕수육과 고량주를 먹어야 진짜 봄날을 실감할 것 같다. 곧 오길 기대한다.
덧)
한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다가 다시 쓰려니 이렇게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모아서 올리는 조금은 성의 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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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미 2010/03/19 22:10
- "나는 조금은 그 예전의 오만한 나로 좀 돌아가야 겠다"...........좋은 멘트네
- 그리고 좋은 글이다. 난 언제부턴가 이 사이트를 즐기고 있다. 시대를 달리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감성.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1. 역사에도 발전 경로가 있듯이(이게 논리적으로 정합하든, 그렇지 않든) 운동 주체에게도 발전 경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나이로 하는 것도 명성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운동을 시작하거나, 지켜오거나,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운동 경로가 보이기 마련이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87년 7월 8일 연세대 백양로 광장에서 이한열 추모사를 하러 등단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추모사는 하지 않고 수많은 열사들을 한명씩 외쳐 부르며 추모사를 대신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을 추모하며 목놓아 울던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맞아 노상에서 단식이란 걸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미래야 뻔하지만 김진숙의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강권통치와 싸우겠다며 모여 앉은 20대 청년들의 깨끗한 열기가 좋았을 뿐이고, 고상한 추모사 대신 통곡으로 자리를 대신한 노목사의 처신이 좋았을 뿐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거리에 나 앉은 김진숙이라는 여자가 좋을 뿐이고, 요새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총명한 초년생 정치인의 좌충우돌하는 어리숙한 행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친구가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잔머리를굴렸다면 나는 그녀를 보는 재미가 덜했을 듯 하다.
나는 내가 미쳐갈 때가 좋다. 승패를 따지기에는 너무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우리가 그냥 좋다. 신영복이 보여주는 지혜로움은 한 30년쯤 후에 승패가 더 이상의 여지 없이 명백해졌을 때 그 때가서 술이나 쳐먹으며 천천히 갖도록 하자.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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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이 창당 10주년을 맞이한 것과 경찰과 검찰이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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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1) | 2010/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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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위 사람들에게 왜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느냐고 질책(?)을 했음에도 최근에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못했다가 아니라 안 했다. 이거 중요하다.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안 한 건 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든 공책이든, 어디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숨 쉬고 있다면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 물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어딘가에 문자로 된 텍스트를 던진다는 의미 그 이상이므로 남들이 볼 수 있어야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자신의 마음에도 글을 쓸 수 있다. 마음에 차곡차곡 글을 쓰다가 도저히 마음 속의 빈공간이 없거나, 아니면 이제는 마음 밖으로 꺼내도 덜 부끄럽거나, 또는 마음에 써 놓은 것들이 어디론가 도망갈까봐 두려워서. 여하튼 그런 이유로 세상에, 현실 공간에 글을 쓰게 된다.
2.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건, 무엇을 쓸 건가이다. 타인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오해하지 말 것은 어떤 글을 써야 하냐는 글의 소재나 내용의 문제지 글의 완성도나 잘 읽힘 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좋은 글, 잘 읽히는 글, 완벽한 글을 상상하면 안 된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사 좋은 글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글이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조금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와 대화, 사색이 동반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법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학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이 세상과 사회를 분석하고 잘 못 된 부분을 바꾸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함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란 좋은 선전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효과적인 선전, 선동 역시 학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3. 위와 같은 생각 끝에 앞으로는 마음에 쓴다는 기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일기와도 비슷할 수 있는데, 일기와 다른 점은 매일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하지만 가급적이면 매일매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제목이 그 날 글감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이게 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제목도 날짜와 그 날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냥 붙이려고 한다.
4. 아침에 출근하면서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4집:레미제라블)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며칠 전부터 이 앨범만 듣는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은 고등어인데 동네주민 연자씨는 이 곡이 너무 인간중심적인 것 같다며, 그리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별로라도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자씨는 이 곡과 벼꽃, 봄눈(이 곡은 박지윤이 부르기도 했는데 작곡가는 바로 루시드 폴, 이번 앨범에 자신이 직접 불렀다)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역시 연자씨는...
5. 나 역시 평소에는 앨범 중 다섯번째 곡인 '벼꽃'과 여섯번째 '고등어'를 주로 듣곤했는데, 최근에는 첫번째 곡 평범한 사람과 두번째 곡 걸어가자를 듣는다. 평범한 사람은 살기위해 올라갔다는 이야기. 하지만 더 갈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 너무 슬퍼하진 말라는 이야기. 이쯤 되면 다 안다. 무엇을 이야기란 노래인지 말이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곡 '걸어가자'는 그냥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 노래와 가사를 먼저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2.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건, 무엇을 쓸 건가이다. 타인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오해하지 말 것은 어떤 글을 써야 하냐는 글의 소재나 내용의 문제지 글의 완성도나 잘 읽힘 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좋은 글, 잘 읽히는 글, 완벽한 글을 상상하면 안 된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사 좋은 글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글이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조금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와 대화, 사색이 동반되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법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학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이 세상과 사회를 분석하고 잘 못 된 부분을 바꾸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함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란 좋은 선전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효과적인 선전, 선동 역시 학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3. 위와 같은 생각 끝에 앞으로는 마음에 쓴다는 기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일기와도 비슷할 수 있는데, 일기와 다른 점은 매일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하지만 가급적이면 매일매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제목이 그 날 글감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이게 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제목도 날짜와 그 날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냥 붙이려고 한다.
4. 아침에 출근하면서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4집:레미제라블)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며칠 전부터 이 앨범만 듣는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은 고등어인데 동네주민 연자씨는 이 곡이 너무 인간중심적인 것 같다며, 그리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별로라도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자씨는 이 곡과 벼꽃, 봄눈(이 곡은 박지윤이 부르기도 했는데 작곡가는 바로 루시드 폴, 이번 앨범에 자신이 직접 불렀다)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역시 연자씨는...
5. 나 역시 평소에는 앨범 중 다섯번째 곡인 '벼꽃'과 여섯번째 '고등어'를 주로 듣곤했는데, 최근에는 첫번째 곡 평범한 사람과 두번째 곡 걸어가자를 듣는다. 평범한 사람은 살기위해 올라갔다는 이야기. 하지만 더 갈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 너무 슬퍼하진 말라는 이야기. 이쯤 되면 다 안다. 무엇을 이야기란 노래인지 말이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곡 '걸어가자'는 그냥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 노래와 가사를 먼저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걸어가자
루시드 폴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루시드 폴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6. 살아가면서 자신을 가슴 떨리게 하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할 지 모르지만 떨리는 이 가슴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사랑도 설렘이나 가슴이 움직이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 단어는 '조국', '한 호흡', '걸음'. 그리고 어쩌면 '연자씨'. 하하하. 내가 오늘 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한 호흡'이다.
7. 대학 다닐 때 읽어던 소설 중에 어쩌고 저쩌한 게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나서 선배들과 토론을 하는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이 책의 종자(핵심 정도라도 파악하자)는 뭐라고 생각하나."였는데 난 '그냥 재미있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난 그 책에서 말하는 바가 '한 호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바로 이 '한 호흡'은 나에게 가슴 떨리는 단어가 되었다. 운동은 바로 이 한 호흡을 위해 하는 것이라 믿었다.
8. 그럼 한 호흡이란 뭘까. '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주의 표어처럼 '한 호흡'은 자신을(주체) 전체에 접속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 역할 등을 조절하면서 결국은 한 몸과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혁신)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존에 알던 '한 호흡'에서는 거칠게 표현하면 내 호흡이 빠른지 느린지, 굴곡이 많은지 등의 현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루시드 폴의 노래처럼 세상이 어둡고, 두렵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신 또는 절대자를 찾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절대자나 신은 그 순간 내 옆에 있지 않았다. 절대자는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즉, 뛰어가든 날아가든, 아마 걸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누구 하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9.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간다.
10. 내가 내린 결론은 '한 호흡' 이전에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무슨 '한 호흡'을 할 수 있겠는가. '한 호흡'은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심장 박동수와 내 심장 박동수를 맞추거나 절대자의 의도를 퍼즐 맞추듯이 분석하는 게임이 아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부단히 걸어가는 과정과 그 결론이 바로 '한 호흡'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질문 중 몇 개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걷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 동안 그토록 걸었던 것은 그 사람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내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의사진찰도, 타인의 이야기도 아닌 스스로 걷는 것이다. 걷는 걸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안해도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운동의 영원한 진리는 결국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이기 때문이다.
11.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올 여름에도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싶다.
7. 대학 다닐 때 읽어던 소설 중에 어쩌고 저쩌한 게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나서 선배들과 토론을 하는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이 책의 종자(핵심 정도라도 파악하자)는 뭐라고 생각하나."였는데 난 '그냥 재미있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난 그 책에서 말하는 바가 '한 호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바로 이 '한 호흡'은 나에게 가슴 떨리는 단어가 되었다. 운동은 바로 이 한 호흡을 위해 하는 것이라 믿었다.
8. 그럼 한 호흡이란 뭘까. '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주의 표어처럼 '한 호흡'은 자신을(주체) 전체에 접속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 역할 등을 조절하면서 결국은 한 몸과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혁신)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존에 알던 '한 호흡'에서는 거칠게 표현하면 내 호흡이 빠른지 느린지, 굴곡이 많은지 등의 현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루시드 폴의 노래처럼 세상이 어둡고, 두렵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신 또는 절대자를 찾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절대자나 신은 그 순간 내 옆에 있지 않았다. 절대자는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즉, 뛰어가든 날아가든, 아마 걸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누구 하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9.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간다.
10. 내가 내린 결론은 '한 호흡' 이전에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무슨 '한 호흡'을 할 수 있겠는가. '한 호흡'은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심장 박동수와 내 심장 박동수를 맞추거나 절대자의 의도를 퍼즐 맞추듯이 분석하는 게임이 아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부단히 걸어가는 과정과 그 결론이 바로 '한 호흡'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질문 중 몇 개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걷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 동안 그토록 걸었던 것은 그 사람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내 심장소리를 듣기 위함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의사진찰도, 타인의 이야기도 아닌 스스로 걷는 것이다. 걷는 걸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안해도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운동의 영원한 진리는 결국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이기 때문이다.
11.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올 여름에도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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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10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핵심은 결국 진보개혁진영의 단합과 연대다. 한마디로 힘을 모아서 MB정부와 한나라당에게 큰 타격을 주자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결론은 이정희, 김부겸과 같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장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이 좋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결론은 이정희, 김부겸과 같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장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이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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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드는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사싱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출처 http://starriness.egloos.com/271575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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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2010/01/21 01:35
그렇군요..~~~...조금은 고민이 이해되기도 합니다만....물론 철학이 대단히 중요하고 결국은 그리고 귀착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철학은 책이나 뭐 이런데서 나온다기 보다도...사람들의 생활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천착에서 나올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내가 30살때 그토록 '평범한 생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지요...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시민적 행태라고 터부시하고 속세를 떠나는 순간 철학은 공허해지지요..
근대 철학은 그랬던것 같습니다....객관세계의 법칙성에 대한 이해....그러나 지금의 철학은 인생관을 정립하는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세계관-인생관-가치관-행동양식의 순서가 아니라 인생관-세계관 -가치관-행동방향 뭐 이런 순서일거라는 거죠...
현재까지 토론회 발표자 신청한 사람
1.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블로그 http://www.leejeonghwan.com/
트위터 @leejeonghwan
2. 이성규 테터앤미디어 미디어팀장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
트위터 @dangun76
3. 석진혁 청년유니온(준) 간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hero990926
트위터 @sactionmask
4. 정다혜 2010년 연세대학교 신임 총학생회장
블로그 곧 올리겠음.
트위터 곧 올리겠음.
5. 김현 머니해킹 저자
블로그 http://www.blog.lawfully.kr
야심차게 기획한 토론회인데 당일 사람들이 별로 안오면 어쩌냐 하는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나 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습니다. 또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학습을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23일) 오후 2시 꼭 와 주세요~
분명 재미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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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진 지금봤는데 느낌 참 좋네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푸르딩딩한 빛이 돌아서
꼭 로모나 필카의 느낌이 드는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