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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사 추모제에서 시인 송경동을 몇 번 보았다. 사실 그 때는 그냥 그런 시인으로 생각했다. 문학적 재능보다는 운동에 대한 열정이 더 넘치는 시인으로 알았다. 난 운동이 문학을 지배하는 시인이나, 감독, 작가를 별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 때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창조해 내는 모든 것들을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데 사용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유리된 작품은 평론가들 속에서나 인정받을 뿐 실제 생명력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2. 송경동의 새 시집(시집 뒷 날개를 보니 초판 1쇄는 2009년 12월 30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사 주길 바랐지만 도서관에서는 슬램덩크 전집을 산다고 하여 그냥, 내 돈으로 샀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출처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310X

3. 송경동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물음들에 답함이지만 읽는 나에게는 새로운 물음들로 다가왔다. 내가 받은 몇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는다.

혜화 경찰서에서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군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층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이번 시집의 첫번째 시다. 앞부분의 통화기록 불법 수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정리할 예정이니 그냥 넘어간다. 한가지만 짚고 가자면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놈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 듯한데 놈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놈들의 그런 대응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가지는 증거인멸(웹상에서의 보안은 정말 중요하다), 의연대처(혹여나 실수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의연함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대응, 한마디로 묵비). 이건 뭐 이정도로 넘어가자.


내가 눈을 떼기 어려웠던 부분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이다. 시에서는 경찰과 시인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말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정치사업, 조직사업은 그 대상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사업은 결국 친해짐으로부터 시작한다. 친해져야 서로의 배움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운동에 대해서,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게 바로 관료적인 사업이고 사람사업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가이다. 그렇지 않다. 놈들은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한다. 어떤 존재의 밑바닥까지 모두 캘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애정을 가지면 그/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아니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아서도 안 되지만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도, 혹은 알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어떤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운동과 사랑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각 관계 속에서 너무 몰라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너무 많이 알려고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조직과 자신이 일체화될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게 썩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건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존재는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침묵의 자유, 더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이다. 헌법이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요즘 시대에는 침묵의 자유가 실종되고 있다. 블로거, 트위터 등의 인터넷 도구들은 한 편으로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세상의 소음을 증가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업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가. 뭐 이 두 질문 자체가 적당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얘기하시라. 그렇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정말 '이게 뭐냐고'라는 말밖에.

4. 결코 사소하지만 않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원주에 갔을 때 그 곳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나에게 "그래도 너는 선택지가 좀 더 있잖아. 하다가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갈 여지도 있잖아."라며 조금은 농담섞인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바로 수긍하는 척 했지만, 그 뒤로 여러 번 그 비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을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으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녀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하는 것이라 배웠다. 또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배움과 믿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영광은 바라지도 않지만 이 혼탁한 운동판에서 누군가라도 길을 제시해 준다면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구걸하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혜를 조금이라도 훔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큰 강을 건너는데 이 과정이 나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배를 만들고 강에 그것을 띄우고 배에 탄 이후에도, 노를 저으며 수십번씩 출발한 강 건너편을 돌아보곤 했다. 못내 아쉬움인지 두려움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랬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노를 젓게 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 아니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바람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나 역시 강을 건너왔다. 바람은 세상 저편에서 이편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좁은 공간, 힘들지만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관계에서도 바람은 불어온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람을 내게 보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동지는 착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옆에 붙어있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바람을 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거 아니겠는가.


5. 아래 시는, 내가 존경하는 민경우 선배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주름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글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를 시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 생각난 사람이 바로 민경우 선배님이다. 특히, 주름의 수만큼 패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어쩔 수 없이 접은 그리움. 이 부분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물론 현재 선배님이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보는, 관찰하는 선배님이 그렇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그리움. 이게 마흔살을 넘은 운동 선배님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 역시 1967년생, 올해 마흔네살로 사십대 중반이다. 시인도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겠는지.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남이 그렇게 인정해 주거나 평가해 주는 게 아니라, 시인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민경우 선배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선배님을 인정하거나 평가하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그게 선배님이 늘상 이야기하시는 후배 키우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 후배들도 결국 사십대가 되고 수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에.


6. 한 때, 계급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던 시기가 있다. 막상 생각해 보면 계급성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감도 안오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말이 그 무슨 멋있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한땐 내 가슴 마당이
잡부속소보다 넓으리라 했다
간이옥 주점 창살방보단 밝으리라 했고
발전기 소리 웅웅거리는
작업장보단 조용하리라 했다

목수도 칠도 방통도
하빠리 기레빠시 인생들
모두 다 내게로 오라 했다
헐거운 삶들 가슴에 들여 살며
달방 주인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세월 흘러 돌아보거니
난 그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

낮술 거나한 노을이
황금들녘 퍼져 일어나지 못해도
아무도 그를 깨우지 않던
따사롭던 내 여름날
가난했던 서정이여

방통 : 콘크리트 가설이 된 바닥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이들.
하빠리 : 기준치에 미달한 하급의 것들.
기레빠시 : 용도에 따라 쓰고 난 후 쓸모없이 남은 자재들.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는 시인의 자기 반성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였지만 계급성은 망치질과 헐거운 삶에서만 움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인데, 나 같은 먹물 운동권들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자위해 본다. 난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경제 공부에도 계급성이 있다" 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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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운오리 2010/02/08 18:51

    시가 좋네요. ^ ^ 저도 오랜만에 시집한권 읽어봐야겠는걸요! ^ ^

  2. 백치미 2010/02/19 18:50

    - 뒤 늦게 봤네....

    -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30대는 간명한 신념이 있었는데.....지금은 어떤거지...생각이 보다 복잡해지고 섣부른 결론을 자제하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반면 저돌적인 행동에는 서툴러졌는데...
    이게 좋아진건가 나쁘진건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건가...

    - 05년부터 슬럼프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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